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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쪽엔 초록과 주황빛이 뒤섞인 감귤밭이, 그보다 더 먼 곳엔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제주 스테이 비우다'는 세 가지 빛깔이 보이는 대지 위에 살포시 자리잡고 있다. 회색의 노출콘크리트로 이뤄진 건물은 자신을 뽐내는 대신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이 덧입혀져 노출 콘크리트 외벽이 깎이고 짙어지면 건물은 새로운 매력을 뿜어내게 된다.
건물이 위치한 대지는 평균경사도가 약 12%인데다 바닥간 단차가 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미운 오리' 땅이었다. 하지만 지형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건물을 짓고 나니 귤나무숲 너머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지형으로 변신했다.
제주 스테이 비우다는 평범한 일상을 예술로 변신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건물의 모티브가 된 감귤 창고는 어느 곳에서나 감귤밭이 펼쳐진 제주에선 가장 일상적이고 친근한 장소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군데군데 삼각 지붕을 얹은 회색 건물이 만들어지는 순간, 감귤 창고는 어느새 특별한 조형미를 갖춘 작품처럼 느껴지게 된다. 가장 제주스러운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주와 설계자는 매주 만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나눴다.
10개로 이뤄진 객실 역시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 품은, 끝없이, 자유로운, 빛, 비인, 늘, 새로운, 지금, 여기라는 순우리말로 이뤄진 방은 10실 10색을 드러낸다. 모든 객실로 들어가는 출입로를 다르게 배치해 방문객들이 서로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비인'의 경우 1층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펜션에서 하우스 콘서트가 열릴 때마다 연주자들이 묵는 '음악가의 방'이다. '품은'은 대지와 어머니의 품이라는 의미답게 가장 고요하고 아늑한 방이다. 창문이 해가 뜨는 방향에 나 있어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느낄 수도 있다. 방 두 개로 이뤄진 '늘'과 '새로운'의 침실은 사다리를 타고 다락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삼각 천장 위쪽으로 창을 내 누웠을 때 밤하늘의 별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건축주인 권지민 대표가 "스테이 비우다에 10번 방문하더라도 전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객실마다 다르게 꾸몄다"고 말할 만큼 각기 다른 객실 특성을 자랑하지만 모든 객실이 갖추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욕실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욕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공간, 즉 '비우는'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욕실에서 자연을 직접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세면대 앞엔 일반 거울이 아닌 흑경을 놓았다. 권 대표는 "모든 것을 선명하게 비추는 맑은 거울을 대신해 그 자리에 나를 비추는 검은 거울을 설치해 보는 행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객실마다 문 옆에 붙여진 문패는 캘리그라퍼 김종건 작가의 글씨를 청동으로 본을 떠 걸어 놓은 것이다. 바로 옆엔 발음과 의미가 영어로 쓰여 있어 펜션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호도나무를 깎아 간결한 디자인으로 만든 가구와 누비 소재, 천연 광목으로 만든 침구 등 작은 구성 하나까지 예술성을 살려 마련했다.
"돌담·감귤창고 등 제주만의 특성 살렸죠" 설계자 방철린 칸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