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홈스쿨 길라잡이] 독서 ⑥ 토론

잘 물어야 제대로 대답한다

[홈스쿨 길라잡이] 독서 ⑥ 토론 잘 물어야 제대로 대답한다 나는 스승 복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내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 평소에 흠모하던 스승을 찾아뵙고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스승께서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한 두 가지 질문을 툭 던지신다. 그런데 그 질문은 늘 정곡을 찌르는 것이라 대답하는 과정에서 실마리가 풀리곤 한다. 그 때마다 “고만고만한 선생에게 열 번 배우는 것보다 고수에게 한 번 배우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한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스승들 가운데 논술의 최고수는 단연 소크라테스다. 그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깨닫도록 질문을 던지는 대화법을 ‘산파법’이라 부른다. 이는 선생의 역할을 출산 시 산파의 역할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토론수업에서 교사의 예리한 질문은 학생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것이 진정한 효인가?’ TV에서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어른들의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생각한다. 만일 학생이 질문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심청에게 인당수에 빠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가?” 이 질문이 학생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이끌어 낼 것이다. 아버지가 벌인 일의 뒷감당을 왜 심청이가 대신해야 했을까? 시퍼런 물살을 차마 보기 두려워서 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뛰어내릴 때까지 심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봉사는 “널 죽여 내 눈 뜨면 뭐하나?”라고 절규한다. 얼마나 눈뜨고 싶었으면 사리분별을 잃었을까? 인간의 갈망은 때때로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심봉사의 행색을 보아 생계능력이 전혀 없음을 알았을 텐데 그에게 공양미 삼백 석으로 눈뜰 수 있다고 제의한 승려의 행동은 어떠한가? 뱃길을 평안케 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희생되었을까?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계약이 성립되는 시대에 힘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었을까?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로 한 결정은 소신이라기보다는 “효”라는 체제유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막다른 궁지로 내몰린 것은 아닐까? 소녀 심청에게 강요된 희생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효’로 미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청에게 “너, 빠져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하고 묻는다면 심청이가 억장이 무너져 통곡하지 않을까? 심청에게 던진 질문은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는 기혼여성에게 “당신 왜 맞고 살았냐?” 라고 묻는 것이며, 성폭행 당한 여성에게 “너 왜 소리 지르고 반항하지 않았어?” 하고 묻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당사자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또 다른 학대가 된다. 질문에는 묻는 자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마련인데, 심청에게 던진 질문은 너무 가해자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지 않은가? 토론은 왜 하는가? 자아성찰로 이끌기 때문이다. 토론의 질은 질문의 수준에 달려 있다. 선별된 질문은 사고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지만, 그릇된 질문은 심각한 사고의 왜곡을 낳는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옛이야기를 읽고 토론하는 것은 구습을 미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解탔?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토론할 때 어른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아이들과 이 주제로 토론하려 하는가?’ 심청에게 던진 질문을 보면 질문자는 토론의 존재이유를 잠시 잊은 것 같다. 홈스쿨 길라잡이의 '독서'부문 집필자가 그동안 맡아주셨던 이영희 한솔교육개발팀장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독서지도 관련 서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현암사)의 저자 김은하씨로 변경됐습니다. 김은하 입력시간 : 2005-03-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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