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잊혀진 제국 스페인을 다시 본다

■히스패닉세계 존 H.엘리엇외 지음. 새물결 펴냄. 음울하고 내면 세계에 침잠해 있는 듯한 얼굴 표정. 플라멩코, 투우와 같은 강렬한 몸짓. 그리고 고야나 피카소의 그림에서 보이는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마력.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는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다소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 지난해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보았듯 이들의 광적인 응원열기도 이 세계가 가진 창조성과 열정의 산물이기 보다는 뭔가 길들지 않은 전근대적인 유산의 일부인 듯 느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현대사 석좌교수로 있는 존 H.에리엇 등 유럽과 미국의 히스패닉 전문가 13명이 참여해 집필한 `히스패닉 세계`(새물결 펴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히스패닉 세계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에 일대 전환을 요구한다. 필자들은 히스패닉 세계의 본 모습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 그리고 이를 통한 창조력을 꼽는다. 스페인은 절대 왕정을 통해 한 국가내의 이질적 요소를 말살시켜 나간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여러 스페인(the Spains)이라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게 우선 강조된다. 가령 스페인 북부지방은 중세시대 아랍세계에 정복당해 이슬람적인 요소가 강한 반면 고대 유럽풍의 켈트 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돼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도 더욱 유럽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원형이 살아 있는 다양한 단위 문화를 기초로 히스패닉은, 특히 문학, 미술 등 예술분야에서, 세계사의 풍부한 상상력과 엄청난 창조력의 보고로 역할해 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나아가 히스패닉 문화가 갖는 이런 특징이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화나 지구화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단초를 찾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저자들은 기대한다. 히스패닉(Hispanic), 또는 히스패니아(Hispania)란 말은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과 스페인이 건설한 라틴 아메리카 및 그 문화를 일컫는 것으로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는 미국내 히스패닉 문화 등 전세계 스페인 계통의 문화를 모두 말한다. 이 문화권은 언어 사용기준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보다 많은 3억2,000만명에 달하고 미국내에서도 백인에 이어 흑인보다 많은 두번째 인구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인적 구성을 배경으로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이 세계 유명작가들을 상대로 가장 영향력있는 소설가를 물었을 때 많은 수가 아직도 돈키호테를 꼽았을 정도로 세계 문학과 예술 방면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 3부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은 시대적 배열에 따른 검토와 주요 분야별 분석을 통해 히스패닉 세계의 본 모습을 종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부는 여러 국가로 분열돼 있던 중세 스페인 시대부터 17~18세기 제국 형성기를 거쳐 라틴아메리카의 정복, 현대 미국내 히스패닉 문화의 형성기까지를 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2부에서는 스페인 문화의 유산과 특징을 종교와 교회, 미술, 가족과 사회, 문학 등 4가지 핵심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3부는 창조적 다원성을 주제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스페인의 독특한 전통을 갈라시아, 카탈류냐, 발렌시아, 안달루시아 등 9개 주요 지역들을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풍부한 도판과 그림, 사진 등을 사용해 편집한 것이 특징이다. 번역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수학한 적이 있는 국내 소장파 학자 5명이 맡았다. 돈 키호테와 무적함대, 신대륙 발견 등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고착화된 히스패닉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이 세계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을 가능케 하는 지침서 구실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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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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