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전세서민의 비애

현상경 기자 <경제부>

강북구 미아3동 인근의 대단위 아파트단지. 얼마 전만 해도 9,500만원~1억원가량 하던 24평형 아파트의 전세금이 불과 2주 만에 1,000만원~1,500만원가량 올랐다. 오른 가격으로 전세 물건이 나오더라도 매물 자체가 적다 보니 나온 지 30분이면 계약이 끝난다. “전세를 구하는 문의는 하루 20건이 넘는데 매물은 1ㆍ2건에 불과해 전셋집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게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전셋값이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이사철을 맞아 수요는 넘치는데 8ㆍ31대책의 여파로 전세생활을 끝내고 집을 사려던 사람들도 전세를 유지하면서 전세공급이 줄어든 탓이다. 그리고 서울 강남, 용인 등 일부지역에서만 일어난다는 전세대란이 어느새 강북 등 서울 곳곳으로 확산됐다. 덕택에 새로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도 고민이지만 전세 계약기간이 끝난 서민들도 고통스러워졌다. 불과 1달도 안돼 전셋값이 급등,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부동산 투기는 없다’는 8.31대책의 구호는 비장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보내는 방송광고처럼 집을 못 가진 서민을 위해 집값을 내리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정작 사시나무 떨듯 세금을 걱정해야 할 집주인들은 “집 안 팔면 그만”이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난 재산세ㆍ종부세ㆍ양도세 부담은 세입자에게 “월세로 전환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않겠다”고 협박해 부담시키면 그만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10ㆍ29대책 이전 수준으로 떨어져 안정세를 보인다면 지금의 우려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론이 당장 오른 전셋값을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서민을 위한답시고 되레 전셋값만 올린 정부에 “왜 이런 건 미리 예측하지 못했느냐”며 원망섞인 분노만 터트리지 않을까.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책상물림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는 관료들에 대한 냉소는 한 두 해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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