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데스크칼럼] 결과지상주의의 오류

20세기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이즈음, 나라안의 이런저런 일들이 에드워드 핼릿 카가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갈파한 이 말을 새삼스러운 의미로 곱씹게 한다.랑케로 대표되는 19세기 실증사학이 『역사가의 과제는 단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입장인 반면 카의 주장은 『사실(史實)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 때만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의 해석은 결국 자신의 현재 입장과 가치관의 반영일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카의 역사관은 새삼「존재와 인식」이라는 근원적 물음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화해와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다. 더욱이 그로인해 과거와 현재의 걸림돌이었으며 또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옥죄고 있는 지역간의 대립과 갈등이 한순간에 녹아내릴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청산이나 정리는 그 절실한 필요성과는 별개로 엄정해야 한다. 사자(死者)에 대한 막연한 관용이나 정치적 이해로 재단될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朴전대통령만큼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지도자도 드물다. 우리경제가 이만한 볼륨으로 커진 것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뚜렷한 소신, 철학에 힘입은바 크다. 하지만 그가 이나라 역사에 남긴 부(負)의 유산도 그에 못지 않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뽑아버리려고 애써도 굳건히 똬리를 틀고 있는 지역감정·정경유착·관치금융·부정부패 등이 모두 그의 통치기간 중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대우(大憂)」로 표현되는 대우그룹 처리와 관련해 흘러나오는 김우중(金宇中)회장의 형사처벌 문제 등을 접하면서의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다. 金회장은 분명 실패한 경영인이다. IMF쇼크 이후 대우그룹 역시 다른 대기업들처럼 정부가 제시한 구조조정에 신속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특히 GM과의 자동차협상을 핑계로 시간만 끌지 말고 잘되는 몇몇 계열사들이라도 팔아서 서둘러 부채비율을 줄였어야 옳았다. 그러나 대우그룹, 아니 金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팽창과 확장을 통해 유동성의 경직을 풀려 했다. 지난날 압축성장시대의 사고관행을 벗어던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대우그룹은 해체의 비운을 맞았고 金회장 자신은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겪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경제는 대우쇼크로 비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대우가 이렇게 된 데에는 현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도대체 왜 쌍용자동차를 인수케 했으며, 삼성자동차를 대우로 흡수시키려 했는가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같은 빅딜논의로 인해 대우는 엄청난 손해를 봤으며 구조조정에도 적지않은 차질을 빚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한때 「한국경제의 신화」로 일컬어지던 김우중회장은 이제 「아집」과 「독선」에 휩싸여 대세를 그르친 「과오투성이」로 급전직하 했다. 모든 명예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1년의 절반을 해외출장으로 보내며 키워낸 그룹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만하면 실패한 경영에 대한 개인적 대가는 어느정도 지불한 것이 아닐까. 남들이 100~200년씩 걸려 쌓아올린 것을 30여년만에 따라잡느라 그렇게 틀 지워졌는지 몰라도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그리고 과정보다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는 결과를 너무 중시한다. 이른바 결과지상주의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금 온 나라를 들끓게하는 권언(權言)유착도, 그리고 이번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역시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어떻게 해서든 출세만 하면 그만이고, 돈만 벌면 모든 것이 묻혀지는 이 사회의 결과우선주의, 그것이 심연(深淵)아래 검은 입을 벌리고 과정의 미학(美學)을 삼켜버리는 까닭이라고 생각해서다. 『기자가 어떻게 이럴 수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인재(人災)가 또…』하는 한탄·비난·자성은 당연하다. 아니, 지금보다 더욱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다시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뿐이다.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세월의 두께속에서 과정은 또 희미해져 결과만 머리를 치켜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는 한 카의 이 말은 작은 위안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역사에서 절대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미래에 있다』. 李宗奐(생활건강부장)JW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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