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5일] 헨리 모건


헨리 모건(Henry Morgan).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으로도 손꼽힌다. 일개 해적에서 영국령 자메이카의 부총독에 올랐으니까. 재테크를 잘한 덕분이다. 희대의 해적, 모건의 어린 시절은 불분명하다. 1635년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과 계약노동자로 바베이도스로 이주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공부보다는 싸움이 좋아 일찌감치 학업을 접었다’는 점뿐이다. 모건이 자메이카에 들어온 1658년은 영국이 스페인을 몰아내고 점령한 직후. 전시 분위기 속에서 1662년 시민군의 장교로 임명되고 사략(적국에 대한 해적행위) 권한을 얻은 그는 소함대를 이끌며 스페인의 식민도시들을 약탈해 악명을 쌓았다. 모건의 특징은 공격 대상 선정과 투자. 스페인의 보물선 대신 주로 도시를 털었다. 해상 약탈은 전리품의 절반을 영국 국왕에 바쳐야 했던 반면 육지 공격은 규정이 없어 수익이 컸기 때문이다. 약탈한 보물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다른 해적들과 달리 그는 농장을 구입해 재산을 불렸다. 최대의 성과는 1671년 초 파나마 약탈. 18세기 이전까지 미주대륙 최대의 전투였던 파나마 약탈을 당한 스페인이 새로 건설한 뉴파나마가 오늘날의 파나마시티다. 잔혹행위 혐의로 본국에 송환됐을 때도 그는 처벌은 고사하고 사면에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4년 뒤에는 자메이카의 부총독 자리까지 꿰찼다. 부동산 투자로 쌓아올린 재산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1688년 8월25일 53세로 사망할 때까지 대부호로 군림했던 모건은 아직도 회자되며 부를 낳고 있다. 해적 소설로는 최초의 히트작인 ‘미국의 해적들(1684년)’에서 세계적인 흥행작 ‘카리브해의 해적’에 이르기까지 모건은 주인공이거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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