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시작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논의가 번져가고 있다. 사적 이해와 공익을 내세우는 주장들로 찬반 대립도 첨예하다. 청년실업과 신용부실, 국내외의 정치적 불안 속에서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국민을 한층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논의는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재정부담과 국토균형 효과를 중심으로 한 정태적 평가에 치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국토구조의 장기적 변화와 이에 수반되는 비용에 관한 것이다.
통계청의 국부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 97년 우리나라의 유형고정자산 총액은 약 2,871조원. 그중 사회간접자본(SOC)의 총자산 규모는 약 388조원이다. 서울의 SOC는 전국의 15%로 인구비중보다는 낮고 면적비중으로는 높은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서울과 수도권의 SOC의 상대적 비중이 아니다. 수도권의 집중을 인구, 첨단산업, 외국인 투자 비중 등의 수치로 비교하는 오류와 같기 때문이다.
국토는 고유한 역사와 독특한 경제사회적 역사의 산물이다. 팔등신이 모든 종족의 표준 체형이 될 수 없듯이 국토의 골격은 국가의 역사처럼 고유한 것이다. 또한 국토 내의 도시와 지역은 고유한 입지와 환경에 걸맞은 고유한 역할을 찾게 되며, 이들 지역의 조화로운 균형으로 국토 골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머리가 크다고 그것을 잘라서 짧은 다리를 늘리기 위한 이식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국토의 일체성을 무시하고 외국의 사례나 국내 지역의 정태적 비교에 바탕을 둔 국토정책은 국토의 생명력을 파괴하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한다. 특히 우리는 넓은 국토를 가진 국가에 비해 국토의 유기적 일체성이 한층 높다.
국토는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되는 유기체와 흡사하다. 오늘의 국토의 모습은 수십 수백년간 형성된 것이다. 사람의 얼굴 모습이 인생역정의 기록인 것처럼 오늘 우리가 보는 도시나 도로망 등 국토의 골격은 오랜 세월 축적된 우리 경제와 사회ㆍ역사적 유산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오늘의 도로나 도시의 위치는 국토 전반에서 그것이 위치해야 할 장소에 있게 돼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국토는 시설물 입지를 위한 의사결정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 쌓인 결과이다. 크게 보면 신도시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이고 동태적인 국토 전반의 흐름에 역행하는 신도시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오늘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행정수도가 서울에 위치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그리고 압축성장 시대에 권력의 핵인 행정기능이 서울에 위치했었기 때문에 수도권이 `과도`한 성장을 했다고 한다. 국토균형개발에 대한 논의는 산업화 초반인 70년대 중반부터 논의가 계속돼온 해묵은 이슈이다. 이 해묵은 이슈가 치열한 사회적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가. 그것은 소위 입지문제가 갖는 배타성 때문이다. 한강은 서울로 흐르고 낙동강은 김해로 흐른다. 이곳에 입지한 것은 저곳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입지에 대한 논의는 이해상충과 갈등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국가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서울의 행정집중은 서울과 수도권의 비중과 국토 `불균형`의 원인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국토의 건설은 바로 이 서울의 대들보에 맞춰 짜였다. 소위 `서울 지향적` 발전이다. 바로 이 국토의 대들보의 기능을 옮기는 것이 행정수도 이전이다. 70년대 말 개발 집중으로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정권은 상당히 구체적인 정부이전 계획을 수립했다가 추진을 중단했다. 지난 20여년간 국력의 성장에 비례해 국토의 골격을 형성하는 SOC와 총자산액은 십여배로 증가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그동안 몇십배 증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들보를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45조원이라고 한다. 대들보를 옮기고도 구조물을 유지하자면 대들보를 받치던 모든 서까래를 옮겨야 한다. `서울 지향적`으로 쌓였던 사회간접시설과 도시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유기체로서의 활력을 회복하는 데 수천조원이 되는 기존의 기반시설과 도시들은 새로운 행정수도의 입지에 맞춰 새로 짜여야 한다.
국토가 효율성을 되찾으려면 수십년, 아니면 더 오랫동안 재조정을 위한 혼돈과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비용은 45조원의 이전비용이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물류비의 증가로 인한 국가경쟁력의 추락, 장기적으로는 수천억원이나 되는 기존의 기반시설과 도시들이 다시 자리를 잡는 동안 미래의 세대가 치러야 할 엄청난 비용이다.
80년대에 한 저명한 외국 학자는 한국의 국토균형개발의 실패가 한국경제를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세계은행에 보고했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의 벽 밑에서 10년을 정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오히려 절실하게 들린다.
현재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외국의 사례는 없다. 치열한 세계적 경쟁 속에서 국토의 생명력을 훼손하는 국가는 없는 것이다. 현안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우리 세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대안이 앞으로 미래의 여러 세대에 부당한 짐을 지우는 우를 범할까 두려울 뿐이다.
<홍성웅<前건설산업연구원장·한양대 도시대학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