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신이 내린 저주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은 개전의 변(辯)을 미국의 석유금수조치에 맞선 군사조치로 강변했다. 석유 보급 기지인 바쿠 유전,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빼앗긴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결국 패전한다. 1차 세계 대전 역시 석유는 전쟁 발발과 승패를 좌우했다. 전후에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분쟁 중 석유와 관련이 없는 전쟁은 거의 없다. 향후 새 분쟁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카스피해와 남중국해 등이다. 미국의 안보 전문가 마이클 클레어는 저서 ‘자원의 지배’에서 “문명 충돌, 종교, 인종 갈등, 내전 등의 다양한 이름을 뒤집어쓴 전쟁의 본질은 따지고 보면 모두 한 지점에서 불씨가 발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 그 중에서도 바로 석유가 문제다. ▦분쟁의 불씨 석유는 도대체 얼마나 남았을까. 추정 총 매장량은 최대 약 1조 500억 배럴, 잘해야 20~30년 남짓 쓸 수 있을 정도 분량이다. 미국의 석유학자 M. 킹 허버트의 유명한 종형(鐘形)곡선에 따르면 세계 석유생산은 이미 정점기에 들어섰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 석유 생산의 정점을 통과했으며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와 러시아의 생산량 역시 매년 줄고 있다. 유가 안정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기술 혁신이 자원에 대한 소비를 줄일 것이라는 낙관론자들의 주장은 지난 8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에너지 절약형인 지식정보산업위주로 성장하면서 설득력을 키웠으나 경제 성장이 소비를 촉진하고 자원수요가 다시 급속히 증가하며 이젠 공허한 외침이 되고 있다. 또한 대체 에너지의 개발도 아직은 시장에 별다른 확신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세계 지배 전략과 연계시키는 미 부시행정부에게서 원유확보는 ‘국가 안보’ 의 문제다. 워싱턴의 지배 세력 네오콘은 특히 중동의 경우 미국의 석유 공급선이 될 뿐 아니라 세계 에너지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이를 차단함으로써 미국의 잠재적 경쟁국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당장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써 가장 위협적인 ‘잠재 적국’ 중국의 목줄을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냉전이후 미국에 꼬리를 내린 러시아도 석유자원이 풍부한 점을 이용, 미국에겐 주는 부담을 키워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따라 워싱턴 실세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른바 석유 메이저들과 밀접히 연결, 세계 통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헤지펀드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결과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월가 투자 은행들까지 나서는 양상이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미국의 이른바 ‘월스트릿-재무부’(W-T) 복합체제는 원유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막강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언젠가 닥칠 석유 고갈에 대비 미국은 물론 많은 서방 선진국들은 산업 재편작업을 진행중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금융과 군사력 중심의 산업구조로 꾸준히 변화시켜가고 있다. 표면적으론 자국내 공해산업 추방 등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제조업의 혈액인 석유의 고갈 시기를 내다본 정책 변경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강하다. 석유를 사용하는 산업이 이제는 세계 환경 협약과 같은 범지구적인 환경 보호를 위한 압력에 직면해 있고 유가가 폭등하게 될 석유 고갈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심각한 위기를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의 책임으로 떠 맡기고 자신들은 금융 산업과 군사력을 강화시켜가면서 석유 위기에 의해 국내 산업에 가해질 치명적 타격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자원을 둘러싼 음모와 국제간 갈등은 이처럼 음지에서 피어나 세계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석유는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니라 저주”란 말에 수긍이 갈 법한 지구촌 상황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