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퀀텀 점프' 기회다] "한국경제는 도전과 응전의 역정" 한국전쟁·오일쇼크·외환위기등 겪어내며 한단계씩 도약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지난 1997년 외환위기는 재앙으로 포장된 축복이다.”(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 역설적이지만 외환위기 덕분에 금융ㆍ기업ㆍ노동ㆍ공공 부문의 구조조정이 일시에 이뤄지면서 우리 경제는 고질병이었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기업ㆍ금융 부문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면 우리 경제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우리 경제는 주기적으로 반복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단계 도약해온 ‘도전과 응전’의 역정으로 점철돼 있다. 한국전쟁, 사채파동, 1ㆍ2차 오일쇼크 등의 경제위기를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 한민족 특유의 높은 성취욕과 교육열, 역동성 등을 통해 극복해왔다. “한국은 20세기 세계사를 새로 쓴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다.(‘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교수)”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저소득 국가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나라이다.(로런스 그린우드 주니어 ADB 부총재)” 등의 해외 평가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반복된 위기는 대한민국이 성공신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경제호(號)는 출발부터 어려웠다. 한국전쟁으로 산업 기반이 초토화되면서 ‘배고픔’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미ㆍ소 냉전체제가 격돌하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미국의 원조 등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1960년대 이후 수출 주도의 산업화에 시동을 걸었다. 두 번째 위기는 1972년 기업부실과 사채파동으로 찾아왔다. 당시 정부는 사채에 의존해 연명하던 대기업들의 부도가 급증하자 사채동결과 장기저리자금 공급 등 긴급조치를 실시해 기업 체질을 강화했다. 세 번째는 1973년 1차 오일쇼크였다. 극심한 유가상승으로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과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과 경제안정화 조치, 고유가를 중동 진출의 호기로 삼는 역발상 등을 통해 1년여 만에 고성장 기조로 복귀했고 중화학공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데도 성공했다. 이어 1980년 2차 오일쇼크와 10ㆍ26사태 등 정치불안이 겹치면서 또 한번의 위기가 도래했다. 대내외 충격이 중첩된 것이다. 당시 우리 경제는 3저 호황에 힘입어 중화학 투자조정과 안정화 조치, 규제철폐와 시장개방, 물가안정 등을 통해 또 한번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보다는 시장 주도의 패러다임이 안착되는 데 첫발을 디딘 셈이다. 외환위기도 전국민에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강요했지만 성과도 남았다. 대마불사 등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기업 체질이 크게 개선됐고 우리 경제의 투명성과 대외 개방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물론 반복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후유증도 남았다. 가령 사채파동 이후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이 고착화됐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1980년대 과잉투자로 이어졌고 1980년대 대외개방 확대는 외환위기의 씨앗을 잉태했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은 기업가 정신의 하락, 수출과 내수 간 선순환 구조 약화, 성장잠재력 등의 문제점을 남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경공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전략→정부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중화학 분야의 산업 합리화→자율ㆍ경쟁ㆍ개방체제로의 이행→개방화와 민간주도 경제운용→외환위기로 금융ㆍ기업ㆍ노동ㆍ공공 부문 구조조정’으로 한걸음씩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위기만 잘 넘겨 지식ㆍ혁신주도형 선진 산업국가로 재도약할 수 있다면 선진국 진입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 우리 경제의 체력이 세계 주요국보다 강한 점을 감안하면 국가 위상도 점프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 관련기사 ◀◀◀ ▶ [한국경제 '퀀텀 점프' 기회다] 산업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