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LG그룹<루마니아 EMGS:6>(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끝없는 투자·도전 「유럽통신 교두보」로/케이블 현대화 등 독·불사견제 한때 압박… 내년 TRS 등 신품출시 부푼 꿈「진창」속에서의 분투. 국내 기업가운데 최초로 루마니아에 합작투자를 실현한 LG정보통신은 현지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유럽시장 「교두보」로서의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LG정보통신은 지난 91년 10월 루마니아의 국영통신업체인 일렉트로마그네티가(EM)와 50대 50 지분 비율로 합작회사 EMGS(Electro Magnetica GoldStar)를 설립했다. 현재 EMGS는 자본금 2백65만달러 규모로 부카레스트 시내 EM사 공장내 한 건물에서 종업원 1백여명이 전자전화 교환기를 조립 생산한다. EM사는 1920년대말 설립돼 통신사업을 독점해온 국영업체로 한때 종업원이 1만여명에 이른 루마니아의 간판급 업체. 흔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보통신관련 업체라면 공해없는 첨단기술 업종으로 꼽힌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아직도 눈으로 직접 봐야 믿는 사회 풍조때문인지 기계가 우위이며 전자는 별 것 아니라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EM의 작업장 모습은 마치 철강·주물공장에 들어선 것처럼 너저분하고 거칠기 그지없다. 한국에선 중소 하청업체가 납품하는 전화기를 명색이 통신업체인 EM이 직접 만들고 있다. 또 전화기 제조에 필요한 플라스틱 사출이나 볼트·너트까지 모두 자체 생산중이다. 게다가 더욱 이상한 것은 공장 복도의 천장마다 조명기기가 거의 없어 대낮인데도 각 작업장은 창고처럼 어두컴컴해 EM이 진짜 통신업체인지 의아할 정도다. 루마니아인들의 근무시간은 상오 7시 출근, 하오 3시 퇴근이 정상. 하지만 EMGS는 상오 8시∼하오 4시 근무를 고집하고 있다. 반면 근무기강은 그리 충실치 못해 출퇴근시간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으며 업무시간중에도 외출이 잦은 편이다. 법률상 근로기준은 엄격해 초급직원이라도 연 5주의 휴가를 줘야한다. 개인 사정때문에 그 해 법정휴가를 다 쓰지 못하면 잔여 휴가가 다음해로 자동 이월된다. 현지 노동법상 출산휴가는 놀랍게도 무려 1년이다. 반면 해고나 징계 등에 대한 법적 규제는 거의 없다. 루마니아인들은 하루아침에 부장­평직원의 직급을 맞바꿔도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전화교환기 제조업체인 EMGS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런 점은 루마니아의 전화케이블 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 기존 케이블은 동선을 종이 피복으로 절연한 형태가 대부분이어서 비오는 날이면 통화감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EMGS가 아무리 최신 전자교환기를 설치하더라도 통신상태가 개선될 리 없다. 한국에선 이미 광케이블 사용이 보편화돼 동케이블은 벌써 15년전에 생산중단됐다. 하지만 최소 2천만달러 이상 초기 투자가 필요한 케이블 사업에 대해 루마니아 정부는 한국의 진출을 원한다면서도 투자보장을 기피한다. 루마니아의 통신시장은 개방직후 유럽 통신업체의 강자인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카텔이 양분한 상태다. LG가 우리 정부의 EDCF(대외 경협기금) 차관을 앞세워 이들 양대 강자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것.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흑해의 연안국가인 루마니아는 안보적 고려때문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최대 현안이다. 따라서 케이블 현대화라는 「사소한」문제로 지멘스·알카텔의 미움을 사 유럽 강국들의 비위를 거스를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루마니아인들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않아 현지에 파견된 한국직원들은 과거 「코리안 타임」의 씁쓸한 기억을 자주 되살려야 한다. 계약서상에 명시된 작업 종료일자로부터 1주일 가량 지나도 일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94년 5월 루마니아를 방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국영통신업체인 롬텔에 교육기자재용으로 10만달러를 기증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기금을 모두 쓰는데 2년가까이 소요됐다. 안달이 난 EMGS의 한국인 직원들이 이런저런 기재를 도입하면 좋겠다고 목록까지 만들어 제시해야할 정도였다. 루마니아의 체신행정 체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통신성·롬텔본부·41개 롬텔 지방청으로 분할돼 있다. 하지만 각각의 조직은 저마다 독자적인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가져 기업활동에 혼선을 안긴다. 롬텔 본부에서 승인을 받아도 지방청에 가면 『처음 듣는 일』이라며 원점에서 재교섭하기 일쑤다. 루마니아는 「스템프(도장)」 문화가 극심한 나라다. 서류 한 장에 서로 다른 기관의 스템프 3∼4개를 받으려고 수주일씩 허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MGS는 합작법인겸 LG정보통신의 현지 지사를 겸한다. 지사 개설 인가권은 상무성이 갖고 있다. 먼저 은행에 등록세를 납부하고 그 영수증을 세무서에 가져가 확인 스템프를 받은 뒤 상공회의소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과정은 곳곳에 선물이 필요하다. 대개 1백달러 안팎의 선물이 통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은 미리 『무선 전화기를 보내라』 『전자수첩을 갖고 싶다』고 연락하기도 한다. 은행에서 본사가 송금한 달러를 찾으려면 서류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언제 어디에 쓸 계획인지까지 보고해야 한다. 그나마 곧장 돈을 인출하려면 창구 여직원에게 콤팩트나 향수 등을 건네야 한다. 루마니아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매우 더디다. 최근 루마니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당초 사유화 대상으로 지정한 3천여개 업체가운데 현재 사유화를 달성한 비율은 30% 미만에 그친다. 리온·일리에스쿠 현 대통령이 차우체스쿠 정권때 공산당의 이론 담당서기를 맡은 경력자여서 사유화 진전에 큰 애착을 갖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또 경제여건의 안정이 이뤄지지 않아 기업활동 차질이 심각한 수준이다. 진출 초기엔 연간 인플레율이 3백%를 웃돌았고 올해도 8월말까지 공식통계상 물가상승률이 30%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년간 루마니아 레이화는 30%나 평가절하돼 환차손 규모가 예측을 불허한다. 전체주의 국가의 잔영인 고질적 행정규제, 사회주의의 「때」를 벗지못한 고용관행, 한심한 근로기강과 사회관습, 낙후된 사회간접시설, 독일·프랑스등 유럽업체의 견제, 우유부단한 현지 정부의 지원자세 등 구사회주의권에서 겪을수 있는 각종 악조건을 거의 예외없이 갖춘 곳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여건속에서 한국인 직원 2명이 이끄는 EMGS가 몇년째 흑자를 시현하고 새 공장 건물을 마련하는 등 「살아남기」에 성공한 것은 눈물겹도록 질긴 한국기업의 「근성」때문이라고 밖엔 다른 설명이 어렵다. EMGS는 내년부터 자체생산한 가입자 보드(PCB)에 한국서 들여온 부품을 조립하는 CKD방식을 도입, 무선통신 중계기기 TRS와 소용량 사설 교환기 VSP 등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EU규격에 맞춰 제품생산을 추진해 현재 기계식 교환기가 대부분인 몰도바,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보스니아 등 인접 국가에서 전자교환기 수출시장을 단계적으로 개척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부카레스트=유석기> ◎인터뷰/홍성무 EMGS 법인장/“세금 등 각종 혜택속 매출신장… EU공략 본격화 박차” EMGS 홍성무 법인장은 『이제 고전은 끝났으며 내년부터 서유럽 수준의 법인 운영을 통해 EMGS를 EU시장 진출의 전진기지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합작진출에 대한 루마니아 정부의 지원은. ▲세율이 50%인 법인세와 20% 안팎인 관세를 5년간 감면받고 있다. 로열티에 대한 송금은 제한이 없으나 아직 루마니아에는 소위 「매판 자본」이라는 시각이 적지않다. 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재무성등 현지 당국에서 몇차례 감사를 나왔고 신분 미상의 현지인들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대비 10%이상 흑자를 기록했으나 일부만 이익배당을 하고 나머지는 유보했다. ­현지 직원들과의 문화적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문화적 감각이 의외로 다르다. 새 건물의 사무실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는데 책상과 서류함 등의 색깔을 고르면서 직원 의견을 물어본 결과 놀랍게도 검정색을 선호했다. 한국의 색 감각으로는 연한 청색이나 회색이 분위기를 밝게 할 텐데 말이다. 일단 직원의견을 수용했지만 민족과 문화에 따라 색상 감각마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기업 홍보는 어떻게 전개해 왔나. ▲통신산업은 공공성이 매우 강한 사회중추 산업이다. 따라서 통신사업의 마켓팅은 각료급부터 국가원수에 이르는 고위 정책판단을 거쳐야 하며 현지여론 조성까지 고려해야 한다.진출 초기엔 신문이나 라디오등을 통해 이미지 광고를 자주 내보내 현지 관련업계에선 EMGS를 잘 안다. 다만 지멘스나 알카텔을 자극치않게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사업을 집중 추진해 왔다는데. ▲루마니아의 통신장비 현대화를 지원키위해 94년부터 97년까지 프라호바 지역에 12만5천회선(5천만달러)의 STAREX­IMS 교환기를 공급중이다. 2차 사업으로 알바·부저우 지역에 4만4천회선(3천만달러)을 97∼99년중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차 EDCF사업은 지난 5월 이수성 국무총리가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고 7월초 정부 심사단이 다녀갔다. 인근 몰도바 공화국에도 EDCF 차관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지 직원들의 수준은. ▲EMGS의 직원가운데 40%는 대졸 출신으로 통신업체답게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다. 기술연구직원들은 25명 전원이 부카레스트 폴리텍대학 출신이다. EMGS는 93년부터 부카레스트 폴리텍에 장학금을 지원, 석차 1∼5위의 최우수 인력을 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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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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