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은 젊고 할 일이 많습니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고생을 해도 젊은 제가 더 잘 이길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말 검찰조사를 앞두고 SK그룹의 양 날개인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나눈 말이다. 두 사람간의 두터운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올들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으로 격랑에 휩싸여 있는 재계 3위 SK그룹. SK는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이라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통해 성장해왔다. 최 회장 선친인 고(故) 최종현 전 회장은 공ㆍ사석을 막론하고 손 회장을 `동업자`로 대우했다. 손 회장에 대한 SK임직원의 존경심은 고 최 회장에 못 지 않다. 손 회장이 흔히 무늬만 그룹 회장이 아니었다는 점은 최근 불거진 비자금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손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주자다. 그렇다고 실정법 적용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고 높은 도덕성을 보여야 한다”는 그의 전경련 회장 취임 일성을 돌아보면 법 적용은 오히려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괘씸죄`였다. 한국의 어떤 경영인도 정치자금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적 지배구조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산을 잃을 수 있다”는 재계 지적을 염두에 둬야 할 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삼성, LG, SK, 현대차 등 4대 그룹의 `소유-지배권간 괴리도`에서도 SK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는 최 회장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 많은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주주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나 일인체제에 대한 염려는 오히려 적다. 손 회장 같은 전문경영인의 존재 때문이다. 공정위 발표자료를 제공한 KDI의 한 선임연구원도 “전문경영인이 제 역할을 한다면 소유-지배의 괴리로 인한 부작용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백만명의 샐러리맨들이 오늘도 `제2의 손길승`을 희망으로 뛰고 있다. 제2, 제3의 손길승은 한국형 지배구조 모델 수립에 적잖은 역할을 할 것이다. 양 날개를 가진 SK의 비행이 추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손철기자(산업부) runir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