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히 더워진 한낮에 비해 아직은 저녁 공기가 선선해 한가한 날이면 저녁식사 후 산책을 즐겨 한다. 며칠 전에도 익숙한 골목을 산책 중이었는데 새로이 자리 잡은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 선곡이 좋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차 한잔을 했다. 맛이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이 카페의 등장으로 골목의 분위기가 달라진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카페가 들어서기 전 골목은 꽤 오랜 시간 방치된 공간으로 철 지난 홍보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발걸음을 서둘렀던 곳인데 이제는 밝아진 분위기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정겹고 활기찬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생각보다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공간디자인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발생시킨다는 면에서 '문화디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문화디자인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 예로 기업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에서는 임직원 간의 소통 증진을 위해 자판기의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부서 간의 교류와 선·후임 간의 편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자판기도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소통과 교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공간이 가진 잠재된 힘이며 새로운 공간디자인의 시작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는 공간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화디자인을 바라보고 있다. 산업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뤄온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던 공간들이 불필요해 지면서 폐산업시설과 같은 사회문제를 남겼다. 특히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전체가 경기 침체란 문제와 맞닥뜨린 경우도 허다하다. KCDF는 이 같은 대규모 유휴공간을 문화디자인이란 측면에서 접근해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재창조한다거나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공간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문화디자인이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아이들의 자아·행복·미래에 대한 가치관 등에 영향을 미치는 바로미터다. 학교 공간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진행 중인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는 학생들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학교 내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작업이다. 시작 단계부터 학생·교사·학부모가 참여해 자신들의 상상이 실제 공간으로 탄생하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학교를 보다 아름답고 밝은 문화적 공간으로 가꾸면서 학생들의 창의력과 문화적 감수성은 물론 학습 효과도 향상시키는 것이 학교를 위한 문화디자인의 역할이다.
버려진 공간과 개선이 필요한 공간을 되살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인, 문화디자인이 대한민국을 디자인하고 있다. 마치 장인이 섬세한 무늬를 새겨 넣듯이, 정성스레 대한민국을 행복이라는 문양으로 채우고 있다. 문화디자인을 통해 아름다운 질감의 행복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