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데스크칼럼] 고통분담의 저편 '라스포사'

고통분담의 저편에는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라 스포사」가 있었고 우리네 지도층의 위선이 있었다.고통분담. 지난 97년말 우리경제가 더이상 혼자 힘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몰려 IMF관리체제아래 들어가면서 국가적 구호와 정책으로 여겨졌던 말이다. 정부관계자들은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입을 열기만 하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고통분담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에 토라도 달라치면 큰 죄를 범하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판이었다. 국민들은 장롱깊숙이 있던 금붙이도 알아서 내놓았고 임금삭감이니, 구조조정이니, 정리해고니 하는 것들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갓난아이의 분유값 댈 길이 막막해 도둑질을 하다가 붙들린 사람, 생계를 잇기 어려우니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던 사람,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나는등 딱한 처지의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이런 비극을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참고 이겨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고통분담은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만의 몫이었던 셈이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의 장관부인 옷로비 사건은 이같이 고통스런 기억과 오버랩되면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을 갖게한다. 지도층의 이중적 행태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허탈감·상실감 등등….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됐지만 여론은 더욱 들끓고있다. 시민단체들은 해명성 수사, 짜맞추기 수사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민심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검찰이나 정부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것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사의 투명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사건을 보는 시각과 대응책이 애시당초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법대로 한다는게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시각과 처리방침이었다. 수사결과에 따라 잘못이 있는 사람은 처벌하고 문책하겠다는 것이나 사건이 과장·확대됐다는 볼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법리(法理)로만 따질 일은 아니었다. 법적으로야 장관부인들의 옷값대납 요구여부가 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묻는 기준일 것이다. 잘못이 없는데도 여론에 밀려 벌을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 사건에는 법이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고급호화 의상실을 들락거렸고 옷값을 자기가 냈든 재벌부인이 대신내주었든 옷을 산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관부인이라고 해서 비싼 옷을 입지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공직자들의 월급이 얼마인데 그런 비싼 옷을 입느냐는 지적도 곰곰이 따지고 보면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소득범위내에서 소비하는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공직자상이지만 지금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앞으로는 이런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꼭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경제여건이나 국가적 상황에서는 그들의 처신은 좀더 조심스럽고 사려깊었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의상실을 드나들던 때는 바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기였다. 고통분담이 국가정책이었던 상황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비웃고 개혁에 역행하는 행동을 한 것 아닌가. 그들을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고 책임을 묻자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을 어찌 여론몰이로 치부할 일인가. 이번 사건은 사건 연루자를 처벌하고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사회전체에 불신의 심화라는 깊은 병을 남긴 탓이다. 국민들에게는 희생을 요구하면서 그 저편에서 호의호식을 하고있는 지도층을 누가 따르겠는가. 공직자에 대한 불신은 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이는 곧 국가에너지 결집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도층의 언행은 보통사람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들의 말한마디 행동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장관부인 옷로비 사건은 이를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고 있다.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은 이 사건을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보다 현명하고 절제된 처신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는 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