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국의 베이비부머 황금연못을 찾아나서다] (1부-4) 이런 즐거움, 저런 재미

친구 사귀고… 아프면 치료받고…"실버타운은 행복타운"<br>끼니마다 영양식단에 여가 프로그램 알차… 청소·빨래 걱정도 '뚝'<br>아직 입주비용 부담… 정부, 稅감면 등으로 혜택 계층 더 늘려야


분당에 살던 김영호(81)ㆍ오분례(78)씨 부부는 지난 2001년 용인 삼성 노블카운티에 입주할 때만 해도 이곳에서 10년이나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씨는 "당뇨도 있고 목ㆍ허리 디스크도 있어서 팔순을 못 넘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가양동 SK그레이스힐에서 지내는 오승학(88)ㆍ유혜자(83) 부부는 2006년 11월 입주하면서 5년치 운영비를 한꺼번에 납부했다. "여기 들어와서 살다 보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다. 11월5일이면 다시 운영비를 내야 한다"며 오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부부는 어느새 100세까지 사는 것을 걱정(?)해야 될 상황이다. 노인들만의 세상. 인생 황혼기에 그동안 식구들에게 갇혀 있던 삶의 테두리를 넓혀보겠다는 시니어들이 주로 선택하는 곳은 실버타운이다. 이곳을 택한 이들은 하나같이 "여기에 살면서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사는 것도 즐겁다"며 "이런 게 바로 노년의 행복"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버주택, 과연 노인들의 천국일까. ◇입주자들, "천국이 따로 없다=실버주택에 거주하는 시니어들은 입주 전 기대했던 것보다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노블카운티에 사는 김씨는 "끼니마다 영양가 높은 식단을 챙겨주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병원ㆍ약국도 있어 몸이 불편하면 언제든 챙길 수 있으니 전보다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지난달 말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가이드가 81세에 이렇게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비법이 뭐냐고 하기에 실버타운에서 살아서 그렇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유혜자 할머니는 최근 마작에 푹 빠졌다. 기자와 만난 13일에도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마작도구를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얼른 점심 먹고 가야지, 안 그러면 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유씨의 하루는 바삐 돌아간다. 새벽4시에 일어나 40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헬스장에서 자전거 등을 타며 6시15분까지 운동한다. 샤워를 마친 뒤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TV도 보고 신문도 읽으며 오전을 보내면 점심 무렵. 정오가 되자마자 식사를 하고는 12시30분부터 5시까지 최근 재미를 붙인 마작에 몰두한다. 유씨는 "우리 같은 노인들은 뇌 세포가 하루에도 몇백 개씩 죽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며 마작을 강력히 추천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잠시 쉬었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함께 사는 남편 오씨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느라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를 정도. 노블카운티 거주자들도 수험생처럼 빽빽하게 짜인 스케줄에 맞춰 미술ㆍ서예ㆍ성악ㆍ공예 등을 배운다. 입주자 송보선 할머니는 85세에 회화 전시회를, 김동성 할아버지는 87세에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다. ◇준비한 사람만이 노후도 즐겁다=실버주택 입주자들의 경우 처음에는 자녀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멀쩡한 자식이 있는데 양로원 같은 시설에 왜 들어가냐"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오히려 더 좋아한다. 청소며 빨래도 할 필요 없고 식사걱정 없이 영양식단으로 밥을 해결한다. 오씨는 "둘이 밥을 차려먹으려면 번거롭고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기도 해야 하는데 얼마나 좋냐"고 말했다. 유씨는 "자식들 다 키워놓았으면 그들의 삶을 존중해줘야 한다"며 "시어머니ㆍ장모 노릇 하려고 하지 말고 노후대책을 세워 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후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실버주택 입주비용이나 관리비 등이 중산층 이상에서나 부담할 정도로 다소 버겁다. 아직까지는 입주자 대부분이 의사ㆍ사업가처럼 자산을 어느 정도 보유한 사람이거나 교수ㆍ군인 등과 같은 연금 생활자다. 따라서 실버주택이 더욱 보편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호갑 노블카운티 상무는 "다양한 계층이 서비스 질에 따라 차등화된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양적으로 확대되면 지금보다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경제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블카운티의 김씨는 "동네 복지관에서 노인들이 많이 지내는데 그것보다 실버타운을 많이 지어 복지정책에 주력하면 실버세대에도 도움이 되고 노인들은 큰 집도 필요 없으니 살던 집을 활용해 주택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주택을 만들듯 정부가 실버주택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령화 사회에 생각해볼 만한 정책이라는 얘기다. 신정렬 SK그레이스힐 총지배인은 "초기 운영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세금감면 등의 혜택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일본 실버주택 제도를 배울 필요성도 있다. ◇실버타운=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밀집해 사는 주거지역을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 노인복지법상으로는 보증금을 내고 월 생활비를 납부하는 '유료 양로시설'과 분양을 받아 소유권을 사고 팔 수 있는 '유료 노인복지주택'이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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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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