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44> ‘특공대를 특공대답게’ 태스크포스의 역설

tvN의 인기 드라마 ‘미생’ 속 영업3팀은 힘 없는 조직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태스크포스는 ‘영업3팀’같은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이들이 허약한 특공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tvN드라마 미생 캡쳐화면

IMF 이후 우리 기업에는 상당히 다양한 경영 관행들이 생겨났습니다. 구조조정과 프로세스 혁신을 동반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디자인’(Business Process Redesign), 모든 정보와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지식경영’ 또는 ‘기업 정보화’, 다양한 부서들이 기능과 필요 중심으로 결합했다가 떨어지는 크로스 펑셔널 조직(Cross-functional organization) 같은 단어들이 그것을 상징합니다. 이것들이 한때 그치고 말 바람인가, 아니면 변화를 주도할만한 트렌드인가는 그 깊이와 정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개념들은 하나의 산업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더이상 사업화의 가치가 없다고 버려지는가 하면 다른 개념과 결합하여 전문적인 경영 용어에서 일상적인 단어로 우리 주변에 깊숙이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직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이런 서구식 경영 철학의 개념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문화에 맞는 조직 구조화 방식인지 의문을 품는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경영 관행의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중에서 제일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조직 구조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태스크포스(TF)입니다. 일 중심으로 잠깐 모였다가 프로젝트가 끝나면 흩어지는 방식의 팀입니다. 일단 이 조직이 꾸려지면 기존 부서나 역량과 관계 없이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모입니다. 그들 간의 대화와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때때로 전통 조직에서는 쉽게 생산될 수 없는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수한 인재의 척도가 어떤 TF에서 일해봤느냐의 여부로 수치화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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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TF 구성원으로 일하는 것이 무력화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사람들이 허점을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우선 조직의 높은 사람이 차출한 TF는 가장 우수한 인력들을 선발해 팀을 구성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기존에 있던 부서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들이 파견됩니다. 자연스럽게 부서 입장에서는 손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일’에 대한 의지는 있으나 그 사람을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지 비전이 없는 경우에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부서장들이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symetry)을 이용해 자신의 조직에서 가장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를 보내거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TF로 발령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조직이 기능과 직무에 관계없이 중요한 일을 탄력적으로 처리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인력과 시간 자원은 낭비해 놓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마는 조직 차원의 비극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TF가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경영학자들은 다름 아닌 조직 차원의 신뢰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뻔한 개념이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TF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미생’의 오 차장이 속한 ‘영업3팀’은 TF는 아니지만 ‘힘 없는 조직’의 서러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사는 조직에서 골칫거리인 일,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모두가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일들을 그에게 맡깁니다. 일종의 ‘폭탄처리반’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 차장은 성공에 대한 열망보다도 평소 ‘일을 열심히 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하려고 애쓰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성인군자는 현실에 없습니다. TF는 쉽게 말해 특공대입니다. 특공 무술이 고도의 의지와 훈련으로 발휘되듯이, TF가 경영진의 의도대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팀이 되려면 그만큼의 힘과 재량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신년 프로젝트를 위한 TF가 조직되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 거는 기대도, 우려도 그리고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기자는 이미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혁신 동력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번엔 더 나아가 힘없는 혁신 프로젝트는 험난한 세상에 조직원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지적하겠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길 기대한다면 그만큼의 힘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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