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도로 설립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놓고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마자 미국이 불만을 표시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분위기대로 AIIB가 설립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시드니 사일러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은 7일(현지 시간) 한국이 중국 주도의 AIIB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우리나라의 AIIB 가입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신중론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일러 보좌관은 “우리는 인프라 투자와 개발에 관여하는 금융기관으로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갖고 있다”며 “두 은행은 지배구조와 조달 등의 측면에서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AIIB가 현시점에서 이 같은 기준을 이행할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IB가 오랫동안 존속해온 WB·ADB와 같은 다자적 개발기관과 협력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며 “한국뿐 아니라 WB·ADB와 함께 일하는 모든 국가들이 AIIB에 대해 공통의 의문점들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WB와 ADB가 이미 아시아지역 인프라 투자 및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AIBB 설립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AIBB는 시 주석이 지난해 10월 동남아 순방 중 처음으로 제안했다. 중국은 AIBB의 최대 출자국으로 유력하다. 중국은 AIBB의 자본금을 당초 500억 달러로 제안했지만 이후 1,000억 달러 수준으로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는 중국이 AIBB 설립을 주창하면서 일본은 명시적으로, 미국은 묵시적으로 배제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지난 5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ADB 연차 총회에서 15개국 아시아 대표단을 별도로 초청해 AIBB 설립 취지를 설명했지만 미국과 일본, 인도는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국은 그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각종 개발 사업에 자금을 지원해왔지만 경제 규모에 비해 발언권이 작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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