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원高의 명암

박시룡 논설실장

원화 가치가 뛰면서 수출 기업들이 비상이다. 올들어 벌써 두차례나 달러당 1,000원대가 무너질 정도로 원화 강세가 지속되자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채산성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이 앞선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환율 하락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을 중심으로 출혈수출이 늘어나는 등 원고 쇼크가 가시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원고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 재정적자 등 쌍둥이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저달러정책을 공언해놓고 있는데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온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외환시장에 달러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 수준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외환보유액도 크게 쌓였다. 상품과 마찬가지로 화폐도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역흑자에다 주식투자를 비롯해 외국자본이 꾸준히 들어오다 보니 달러값이 떨어지고 원화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수출과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알게 모르게 환율 방어에 노력해온 당국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비용 때문에 환율방어의 고삐를 늦춘 분위기다. 오히려 외환 규제를 대폭 풀어 해외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틀고 있다. 달러를 쌓아놓고 환율이 떨어지게 하는 것보다는 해외소비를 촉진해서라도 달러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인 듯하다. 미국 저달러정책에 환율방어 한계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자국 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경제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우선 달러 표시 국민소득이 높아진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심한 불황의 몸살을 않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4,0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제성장은 4.2%에 그쳤지만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달러 표시 국민소득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단순화하자면 달러에 대한 환율이 지금보다 몇십 %만 더 떨어지면 염원하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입품이 싸지고 해외에 나가서 적은 돈으로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환율 하락이 가져다주는 이점이다. 해외소비가 늘어 국내소비가 안된다고 불평하지만 원화 강세에서 해외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고 보면 환율에는 어느 정도 마술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생각도 든다. 화폐간 교환 비율이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화폐간의 수요와 고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은 일본과의 엄청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플라자합의라는 인위적인 방식을 통해 일본 엔화의 환율을 절반 수준으로 낮춘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달러화에 대한 일본의 돈의 가치가 2배가 된 것이다. 달러 표시 일본 상품의 가격이 2배로 뛴 반면 미국에 대한 일본의 채권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역으로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일본에 대한 채무를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미국 경제가 살고 세계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는 명분 앞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본 돈의 가치를 2배로 높이는 것을 수용했다. 구조조정과 기술력 제고가 대책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경제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던 일본 기업들은 강력한 구조조정 바람에 휘말렸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말이 유행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일본 기업들의 대탈출이 일어나면서 일본 특유의 일체형 생산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엔고가 몰고 온 변화였다. 지금의 원화 강세는 20년 전 엔고와 비교하면 상대도 안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국내 기업들의 채산성이 나빠지고 출혈수출 비명도 들린다. 수출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경제가 걱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몇년간 지속돼온 경상수지 흑자가 다시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전망이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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