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기업 부실채권 회수 국내은행이 더 무섭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 은행을 인수하는 외국 금융기관이 여신을 마구잡이로 회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그러나 외국에 팔려가는 이들 은행보다는 합병이나 외자유치를 통해 대형화하고 있는 국내 은행들이 더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합병은행들은 그동안 거래해온 기업들의 신용 재평가를 통해 부실기업은 과감하게 퇴출시킨다는 방침을 마련하고 있다. 더구나 내년으로 예정된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변경을 앞두고 대부분의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회수할 예정이어서 기업들의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불안한 기업들= 제일은행이 미국계 뉴브리지로 매각된다는 소식에 가장 긴장한 것은 제일은행 거래기업들이다. 매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서울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외국 자본에 넘어간다는 얘기는 기업 입장에서 거래 상대가 그만큼 까다로와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기업 규모나 지명도 때문에 국내에서 우량 거래처로 통했던 기업들도 선진국 통용 심사기준으로는 부실로 판정돼 은행 거래에 애로를 겪을 우려가 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 대형 부실기업들의 부도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경영이 신통치 않으면 곧바로 대출을 중단하고 여신을 회수하는 것이 외국 금융기관들의 영업방식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부실 징후가 보이는 기업들은 앞으로 외국 자본이 지배하는 제일·서울은행의 돈을 끌어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 ◇급격한 변화는 없을 듯= 하지만 이들 은행이 외국에 매각된 뒤에도 당장에 기업여신 활동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기업에 대한 여신을 서둘러 회수치 않도록 정부와 외국 인수업체가 합의한데다 2년간의 풋백옵션(부실채권을 정부가 인수) 기간을 설정하는 등 충격예방조치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최근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해도 점포나 인력을 크게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뉴브리지의 「한국식 경영」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뉴브리지는 대부분의 거래기업들을 유지하면서 일부 부실채권만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제일은행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떠안아주므로 인수기업으로선 손해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출 차별화 움직임 확산= 전문가들은 『제일과 서울은행보다는 오히려 대형은행들의 여신관행이 크게 바뀔 것』이라면서 『기업들은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형은행들이 성장성과 기술력 등 「미래의 수익가치」를 대출심사 기준으로 적용할 움직임인데다 정부도 내년부터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을 이같은 방식으로 바꿀 예정이다. 담보위주 대출 시대가 끝나고 있는 셈이다. 김진만 한빛은행장은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금 사업이 잘 되더라도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라면 과감하게 손을 뗄 것』이라고 말해 기업대출을 차별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의 변화는 당장 올해부터 금융시장에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은행들은 적립기준 변경을 앞두고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출부터 회수에 들어갈 태세다. ◇개인고객 서비스는 확대= 해외에 매각된 은행들과 거래하는 개인고객들의 편익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은행이 매각을 계기로 부실을 털고 경영을 완전 정상화하기 때문에 거래 고객입장에서는 안심하고 은행에 돈을 맡길 수 있게 된다. 또 외국자본과 함께 선진국의 성과급제도 등 각종 선진 경영기법이 유입돼, 서비스 향상을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전반을 놓고 볼 때도 해외자본 유입 후 은행권내 고객유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각 은행이 앞다퉈 고객 구미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해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신 예전처럼 서비스를 공짜로 받을 수는 없게 된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기법이 도입됨에 따라 은행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이에 걸맞는 비용(수수료)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상복·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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