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밥상 뺏기 다름없는 임금체불

하갑래 단국대 법대 교수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중국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이 불후의 역사책 사기(史記)에 남긴 말로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의미다.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지난해에만 약 30만명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가족을 포함해서 100여만명이 차례상은커녕 아침 밥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선진국도 임금체불이 심각할까. 우리처럼 월급이 일반적인 일본은 2011년 기준 약 5만명에 2,000억원 수준의 체불이 발생했다. 단순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6분의1 수준이며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15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솜방망이 처벌 악용 체불 되풀이

서양은 주급이 일반적이어서 근로자는 체불임금이 많이 쌓이기 전에 새 직장을 구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 정부도 임금체불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명절 때마다 체불임금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언론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대책반을 만들어 즉시 해결해주겠다는 극약처방도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임금체불 수준은 대동소이하다. 정부도 할 말이 있다. 체불임금에 대해 지연이자를 물리고 체불사업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기업의 임금체불 사실을 신용평가자료로 제공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제도를 내놓는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성적표가 초라하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무분별한 온정주의를 버려야 한다. 법은 임금체불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철퇴를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경영 마인드를 약화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솜방망이만 사용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법이 보장하는 쇠방망이가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온정주의는 일시적 자금난 등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에 집중돼야 한다. 이들이 체불임금을 청산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체계가 적절하게 갖춰져야 한다.

관련기사



둘째, 임금체불에 대한 응징이 실질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임금체불액에 대해 배액을 배상케 하고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배제하며 지연이자제의 적용을 퇴직자에서 재직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셋째, 정부가 체불임금에 대해 직접 책임져야 한다. 정부가 체불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체당금제도가 도산기업에만 적용되는 등 매우 협소하게 운용되고 있다.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발전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공공발주서 배제 등 징벌 강화를

넷째, 감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정원은 1,200명 정도다. 그런데 충원율은 85%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10%는 육아휴직 등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둔 채 임금체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사막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근로감독관 확보뿐 아니라 공급이 넘쳐나는 변호사와 공인노무사까지 활용하는 종합적인 감독체계를 새로이 구상해야 한다. 고용률을 70%로 높이고 정년을 연장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초과근로수당을 인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하고 임금을 떼이는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일이 주위에 널려 있는 한 장밋빛 미래는 회색의 그림자 뒤로 숨을 뿐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민이식위천이라는 문구 앞에 왕자이민위천(王者以民爲天)이라는 문구를 배치했다. 국가는 국민을 하늘로 여겨야 한다. 국가의 하늘이 밥상을 뺏기면 안 된다. 올해 추석부터라도 임금체불이라는 사자성어가 언론에서 모습을 감추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