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그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쉽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게 된다. 특히 어떠한 조직의 변화를 추구할 때에 그 조직과 그 조직 내 존재하는 하부 조직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면 변화의 동력과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쉽게 발견하고 그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의 꽃은 시장이다. 시장은 다양한 이해 관계가 거래되는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곳이다. 시장에는 이해 관계가 다른 참가자들이 있으며 이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가격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일치될 때 거래를 함으로써 이해가 조정되는 것이다.
이런 시장 참가자들의 행동 준칙을 마련하고 이 준칙을 위배하는 자에 대해 처벌을 하는 곳은 바로 감독 당국이다. 시장 참가자와 감독당국은 각각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장 참가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를 하고 감독 당국은 마련된 행동준칙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각각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며 존재 이유에 따른 행위를 비난할 근거는 아무에게도 없다.
문제는 시장이 올바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올바로 기능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도덕적 해이는 시스템의 유인(誘認) 구조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 것으로 결코 시스템 내 각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시장 참가자에게 도덕적인 규율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해야 될 일은 규칙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정책 당국은 시장 참가자의 존재 이유를 전제로 원하는 방향의 정책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정책 수단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독당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이 잘 지켜지는지 불편부당에게 판결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명확히 하면 된다.
만일 감독당국이 정책당국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든지, 시장 참가자가 정책당국이나 감독당국의 역할을 한다든지 하는, 즉 존재 이유를 혼돈하는 경우가 생기면 시장은 혼란에 빠지고 시장의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시장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고 선진형으로 되기 위해서는 시장 구성원의 존재 이유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그 구성원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구별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항상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 규범과 행동 양식을 가져간다면 우리의 시장은 더욱 선진화될 것이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중심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용규(동원증권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