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위원장은 2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구조조정 수요 등으로 불가피하게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는 경우는 신규순환출자 금지의 예외로 인정할 방침"이라면서도 "다만 기존 순환출자 고리에 없던 새 계열사를 등장시켜 신규 순환출자를 형성한다면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규제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노 위원장의 발언은 산업은행이 최근 발표한'금호산업 구조조정안'을 겨냥한 것이다.
공정위는 오는 9월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신규순환출자 금지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개정안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총수가 부실 계열사에 다른 계열사 지분을 출자해 순환출자가 형성되거나 ▦부실 계열사 증자 과정에 다른 계열사가 참여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경우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금호산업 구조조정 안은 이런 두 가지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의 전격 제동에 산업은행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며 구조조정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법안과 배치된다면 안 하는 방향이 맞지 않겠느냐"며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채권단 의견을 들어 수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금호산업 구조조정안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금호산업 기업어음(CP) 790억원어치를 출자전환해 주식으로 바꾼 뒤 이를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에 매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렇게 되면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산업'으로 이어지는 신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된다.
공정위는 이 방안이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금호산업도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나항공이 기업어음을 출자전환하면 두 회사 간 상호출자 고리 형성이 불가피하다. 아시아나항공이 출자전환을 통해 얻은 금호산업 지분을 금호터미널에 매각하는 것은 이런 상호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위가 상정하는 두 가지 예외사유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신영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예외는 채권단이 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순환출자가 형성되는 것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라며 "금호산업 구조조정안은 예외사유인 대주주 지분의 출자나 계열사의 증자 어느 한쪽에도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상 금지되는 상호출자를 피해가기 위한 일종의 편법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갑작스런 구조조정 방안 불허 방침에 당황한 산은은 내심 당혹해 하면서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수정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기업은 모두 순환출자 금지의 예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공정위가 추진 중인 법안과 배치된다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금호산업 기업어음을 출자전환한 뒤 시장에 내다 파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두 회사 간 상호출자 고리가 형성되지만 6개월 안에 출자전환한 지분을 내다 팔아 상호출자를 해소하면 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산은 등 채권단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으면서도 "상장폐지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호산업은 자본잠식률이 80%를 넘어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상태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금호산업 기업어음을 출자전환하면 자본잠식률이 50% 이하로 떨어져 상장폐지를 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