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령화 쇼크] 25회.일본(下)-개호(介護)보험

도쿄 인근의 치바현에 살고 있는 후지사와 우타코씨(56)는 3년 전부터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시어머니(90)와 씨름중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직장에 다시 나가려 해도 시어머니가 집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사회복지사 다나카 도미씨까지 나서서 “며느리가 쓰러지는 날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거들지만 시어머니는 요지부동이다. 우타코씨는 자신도 지병인 요통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도 복용하고 있다.관련기사- - 3년간의 병구완으로 더 이상 몸이 못 배겨날 정도다. 이러다간 정말 둘 다 쓰러져버리지나 않을 까 불길한 생각도 자주 든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개호(수발)서비스를 받는 것을 허락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2000년 개호보험 도입=개호서비스는 일본 정부가 공을 들여 만든 노인의료ㆍ복지서비스의 핵심. 우리나라에서도 한나라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이 비용의 10%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재원과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충당하는 노인수발서비스로 지난 2000년 4월부터 시행됐다. 신체 장애나 병의 정도에 따라 6개 등급으로 나눠져 가까운 요양시설이나 집에서 치료나 재택서비스(가정봉사원이 목욕, 음식, 청소, 빨래 등을 대신 해주는 것)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 40세 이상의 국민들은 의료보험료뿐 아니라 개호보험료를 따로 내야 한다. 신가이 노리토시 와꼬병원 원장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폭 넓은 노인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불가피한 선택=일본이 독일의 공적 개호보험제도를 본 따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된 데는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출산율 하락, 이혼 증가 등으로 노인부양을 더 이상 가족에 맡겨 둘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가 근본적인 배경이었다. 그러나 더 뜯어보면 일본 정부가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취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정부는 73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70세 이상 노인들의 의료비를 무료화해 재정을 파탄 위기로 몰고 가는 우(愚)를 범했다. 80년대 들어 이 법은 여러 차례 수정과 개혁을 거치기도 했지만 자민당의 기반이 노인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설익은 대책들만 남발했을 뿐이다.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급기야 소비세까지 도입했지만 자고 나면 불어나는 노인의료비(그림참조)를 감당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쿠마무라 야스히라 도요대학 조교수는 “개호보험은 국가가 맡아오던 노인부양문제를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개인으로 전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불거지는 문제점들=후생노동성은 “개호보험이 도입 후 2년 동안 큰 혼란 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정부의 평가와는 달리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노인의료비에 대한 재정부담이 당초 의도한 만큼 줄고 있는 지 단정하기 어렵다. 타다 히데노리 유통경제대학 교수는 “의료와 복지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개호서비스 증가가 노인의료비 증가와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의 질이나 비용이 지역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예를 들어 도쿄의 개호보험료는 월 1,300엔인데 반해 홋카이도는 1만2,800엔에 달해 두 지역의 개호보험료 차이가 10배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개호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타다 교수는 “한국도 노인부양에 대한 가정의 책임을 사회로 이전해 가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하지만 복지인프라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준비 없이 개호보험과 같은 서비스를 덜컹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고민하면 일본보다 더 좋은 개호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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