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역사는 승자 중심의 인사이더만의 몫인가. 역사에 추동력을 제공한 아웃사이더는 주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평가에서 배제돼도 좋은가.
삼인이 펴낸 인물비평서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는 한국현대사에 큼직한발자취를 남겼으면서도 이름이 지워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시대의 주류가 되지 못한채 권력에 저항했거나 이념을 달리 했다는 이유로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친일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재야 역사학자 임종국이 그 한 예. 65년 치욕의 한일회담을 지켜본 그는 이듬해 '금지된 연구'인 「친일문학론」을 내 파문을 일으켰다. 자료수집차 일본을 다녀오고 싶어도 여비가 없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89년 숙원인 <친일파 총서>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성균관대 설립자 김창숙은 일제 때는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반독재 투쟁으로 일관한 '마지막 선비'였다. 나석주 의사의 거사를 꾀한 그는 27년 밀정의 밀고로체포돼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돼버렸다. 단정수립을 반대한 그는 이승만정권 내내 탄압받아 집한칸없이 여관 등을 전전하다 62년 외롭게 숨졌다.
유병진 판사는 국민기본권의 외로운 파수꾼으로 꼽히지만 평가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서울에 남은 부역자를 엄벌하라는 여론에 맞서 사형 구형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진보당 사건 재판 때는 조봉암을 뺀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무죄를 선고해 '용공판사'로 몰리며 법복을 벗어야 했다.
<자장가>의 작곡자 김순남은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 금기시됐다. 48년 월북하기전 작품집 「산유화」,「자장가」로 '조선가곡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월북 후 남로당 간첩사건에 연루돼 숙청된 뒤 83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 대한 해금조치는 88년에 이뤄졌다.
'한국현대사의 아웃사이더 11인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언론인으로박정희 정권의 첫 희생자가 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재일교포 지위향상을 위해몸바친 재일사학자 박경식, 진보교단 지도자로 한신대를 설립하고 민주화를 위한 애쓴 김재준 목사 등의 삶도 다뤘다. 이밖에 국악인 정철호, 도예가 유근형, 승려 출신의 혁신계 정치인 김성숙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김경재, 김삼웅, 김수현, 김영만, 박원순, 원희복, 이도형, 이치석, 임혜봉, 정운현씨 등. 2백79쪽. 9천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