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선물거래소가 드디어 오는 23일 부산에서 문을 연다. 미국 달러,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금 등 3가지 선물과 미국달러 옵션을 상장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막대한 환차손을 경험하는 기업들을 지켜보면서 국내에 선물거래소가 있었다면 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터라,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우리나라 보다도 시장경제의 경험이 짧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중 일부가 우리 보다 앞서 선물시장을 개설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반인들에게는 선물거래라는 단어가 약간은 낯설겠지만, 선물거래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밭떼기」라는 것과 비슷하다. 밭떼기를 통해 채소가 출하되기 훨씬 전에 그 가격을 미리 정해놓음으로써 중간도매상과 농부는 채소가격 폭등 또는 폭락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가격이 변하는 모든 상품들은 미리 선물거래를 통해 가격변동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선물거래를 통해 가격변동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헤징(HEDGING)이라고 한다. 사실 각국을 대표하는 선물거래소들의 역사를 보면 곡물·원유·비철금속·귀금속·환율·이자율 등 가격이 변동하는 상품을 취급하는 경제주체들의 헤징동기에서 시작됐다. 미국이 전세계에서 소비자물가가 가장 안정되어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뉴욕상업거래소(NYMEX) 등 수많은 선물거래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결국 선물거래소의 존재는 물가안정이라는 경제정책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선물거래의 역사가 25년이나 된다고 한다면 일반인들은 꽤나 놀랄 것이다. 70년대 초반 원자재파동이 일어나자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당시 정부는 상품선물거래제도 도입을 결정하고 조달청을 선물거래담당기관으로 지정했으며 조달청차장은 선물거래위원회의 위원장이 됐다. 국내선물거래중개사들 대부분이 그 당시에 설립이 인가됐고 선물관련 주요 간행물 발간 및 세미나개최는 물론 총 1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외 교육훈련을 통해 우리나라 선물거래의 현재를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현재 조달청은 비철금속의 안정적 확보라는 차원에서 런던금속거래소(LME)를 통해 선물거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도 선물거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상품 및 금융선물을 통합운영하는 한국선물거래소의 개장을 축하하면서 머지않아 한국에도 미국 선물거래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중심부에 위치한 선물거래소들의 거리인 라살街(LA SALLE ST.)가 탄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