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5월 11일] 이 회사 노사는 몇 촌이죠?

촌수(寸數)도 정하는 시대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끼리 인터넷 세상에서 만나 '일촌'이 된다. 왜 무촌이 아니고 일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촌이면 부모자식 관계니까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인지 짐작이 간다. 일촌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일촌이 많다는 것은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촌수 맺기는 삭막한 인터넷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적 관계이다. 안드로메다 노사인식 부적절 기업의 노사관계도 상생 정도에 따라 촌수를 매길 수 있다. 노사 간 발전적인 상생관계를 일촌이라고 정의한다면 노조는 사측을 노동을 착취하는 대상으로, 사측은 노조를 경영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수준은 이웃사촌만 못하다. 노사가 건강한 견제기능을 할 때 기업도 발전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사가 서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며 팔목을 비틀 기회만을 노리는 기업들이 많다. 이런 관계로는 기업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요행히 성장세를 탄다고 해도 오래 갈 수는 없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새 노조법에 대한 시각도 기업의 노사 촌수를 짐작하게 한다. 노동계는 새 노조법의 핵심인 타임오프 한도가 근로면제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된 뒤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흔들리고 있다. 금융노조는 한때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을 점거하는 극단적 행동에 나섰다. 한노총 탈퇴도 예고한 상태다. 금융노조와 금융사, 금융노조와 한노총은 '무촌'이지만 이혼을 앞둔 부부 사이 같다. 장석춘 한노총 위원장은 타임오프 의결을 항의하는 조직원들의 강한 반발 앞에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장 위원장은 그날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오늘로 6일째다. 기업에 따라 타임오프에 대한 노조의 대응 움직임이 다르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오히려 전임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사측에 전달했다. 전임자 급여 지급을 합리적으로 줄이자는 새 노조법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다. 거의 '4차원 안드로메다' 수준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4차원'은 말과 행동이 남들과 다르게 특이한 사람을 일컫는다. "걔, 완전히 4차원이야" 하는 식이다. 중고생들 사이에서만 사용될 법한 말이지만 포털에 용어설명이 나올 정도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비슷한 의미로 '안드로메다'라는 말도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안드로메다 성운이 지구로부터 200만광년 떨어진 것을 비유해 상식과 동떨어진 생각을 할 때 쓰인다. '4차원 안드로메다'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시공을 초월한 엉뚱한 생각'쯤 될 것 같다. 기아차 노사는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촌'관계 정도로 보인다 기아차 노조가 황당한 요구를 한 날 현대중공업 노조는 타임오프를 수용할 뜻을 밝혔다. '지속가능경영' 일촌 맺기부터 현대중 노조는 새 노조법 시행에 대비해 그동안 노조조직을 정비하고 새로운 수익사업 창출을 고민해왔다. 타임오프에 따른 전임자 축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비를 조금 더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통해 법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방법을 찾을 계획이다. 현대중 노조의 이 같은 움직임은 타임오프를 거부하며 사측과 국회의원ㆍ정부를 압박하는 귀족노조들과 확연히 차별된다. 이 정도면 '일촌'관계로 봐도 될 것 같다. 세계 금융시장은 그리스 사태에 따른 유럽 재정위기로 또 한번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지만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안전지대는 없다. 어느 나라도, 어느 기업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때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노사 간 가까운 촌수를 유지하는 곳이다. 주식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이 회사 노사는 몇 촌이죠"라고 묻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기업의 첫 단추를 사장과 노조위원장의 일촌 맺기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