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수차례에 걸쳐 시장에 개입하고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장관이 강한 달러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도 외환딜러들의 엔화 투기바람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엔화 초강세는 한국·타이완 등 주변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주지만 지역경제의 핵심축인 일본의 경기회복세를 초기에 꺾어 아시아 경제 전체에 역효과를 미칠 우려가 있다.
루디 돈부시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엔고는 일본의 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경제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력이 동아시아에서 70%를 차지하고 동아시아 교역량 중 절반이 내부에서 거래되므로 일본의 침체가 아시아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엔화강세는 미국보다 일본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은 재정적자가 GDP의 10%에 달하는데도 불구, 지금까지 2,000억달러의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 금융시장을 연명시키고 있다. 내수시장은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해 돌아가고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인 엔화약세에 힘입은 무역흑자로 기업들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엔고는 이를 뒤집어놓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달러약세가 수출경쟁력을 높여주지만 외국투자가들의 이탈로 주가·채권가가 하락하고 일본산 수입품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물가상승, 금리인상에 대한 압박이 커진다. 그러나 엔화 이외의 통화에 대해 달러는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큰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슈퍼 엔고에 대해 일본은 초조한 반면 미국은 느긋한 입장이다. 일본은 구로다 하루히코 재무차관을 워싱턴에 보내 공동개입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오히려 일본이 보유외환을 쏟아붓는 미봉책보다는 엔화를 찍어내 일본 내수시장을 부양하고 엔화약세를 유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발권력 동원을 반대하는 일본은행의 고집을 꺾기 전에는 미국이 공동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외환전문가들은 투기적 기대심리가 워낙 강해 1달러당 100엔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외환딜러들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서려 할 때 정부가 개입, 적정가격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강한 달러론의 주창자인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은 취임 초기에 1달러당 79엔의 바닥에서 개입, 성공했다. 서머스 장관의 현 미 재무부팀도 달러가 돌아설 지점이 어디인가를 예의 주시하며 개입시기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김인영특파원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