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27일] 대한해협해전


1905년 5월27일 새벽 동지나해. 민간선박으로 위장한 일본 해군 정찰함이 2시간의 추적 끝에 제1보를 날렸다. ‘적 함대 발견. 침로 동북동. 현재 시각 04시30분.’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금일, 날씨는 맑고 파도는 높다.’ 예상대로 대한해협으로 들어온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러시아 함대가 일본의 매복을 눈치챘음에도 끝내 대한해협을 항로로 택한 것은 연료가 부족했던데다 일본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는 자만 때문이다. 자만은 참패를 불렀다. 오후1시55분부터 시작된 포격전에서 일본은 지구의 절반을 돌아오느라 지치고 지친 러시아 함대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이튿날 러시아 함대는 백기를 올렸다.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온전하게 당도한 러시아 전함은 단 두 척. 38척의 전함 중 21척이 침몰되고 나머지는 나포됐다. 전사 4,830명에 함대 사령관을 비롯한 포로가 6,106명. 반면 일본은 어뢰정 세 척을 잃고 전사 117명, 부상 583명에 그치는 대승을 거뒀다. 공업력이 빈약해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건조한 전함으로 무장했을 뿐 국산 함정이라고는 중소형 몇 척에 불과했던 일본의 승리는 세계 역사를 바꿨다. 러시아는 혁명을 맞고 일본은 열강의 일원으로 대접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 막힌 조선은 더욱 더 쇠락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본이 먼저 보고 먼저 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람에 대한 투자와 철저한 대비. ‘인재만 있으면 함정과 대포ㆍ기계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생각에 개항 초부터 소년들을 서구에 보내 지식을 익히고 전쟁 발발 5년 전부터 ‘세 끼를 두 끼로 줄여’ 해군을 키운 결과다. 장기 비전과 인간에 대한 투자가 역사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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