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6일 발표한 6대그룹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는 참여정부 재별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놓고 공정위와 재정경제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부당내부거래 적발규모가 현격하게 감소돼 그동안 공정위가 주장해왔던 계좌추적권의 존폐여부에 대한 재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고, 총지원액(실제 거래가액에서 정상거래가액을 뺀 수치) 900억원 가운데 81.9%가 SK그룹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공정위 조사 효용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됐던 현대그룹은 단 한건도 적발되지 않았다. 재계는 조사결과가 나오자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된다는 공정위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는 증거라고 반발하는 분위기다.
◇부당내부거래 감소=공정위의 이번 조사 결과 가장 큰 특징은 과징금 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1차(98년5월~6월)와 2차(98년6월~ 7월) 조사에서 각각 722억원과 20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데 이어 99년 5월 시작된 3차 부당내부거래 조사 때는 794억원의 과징금을 징수했다. 지난 2000년8월~10월 대우그룹을 제외한 4대 기업집단의 36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부당내부거래 조사에서는 442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그러나 과징금이 줄었지만 부당내부거래가 감소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우선 조사대상이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4차례의 조사대상이 30여개사에 달한 반면 이번에는 22개사만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은 현대그룹의 경우 지원 주체가 될 현대상선이나 현대엘리베이터가 조사대상에서 빠지고 이미 그룹에서 분리됐거나 분리예정인 현대종합상사, 현대증권이 대상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어떤 게 적발됐나=적발규모가 가장 컸던 SK그룹의 경우 분식 회계가 적발된 SK해운이 관계사에 600억원을 빌려준 뒤 채 1년도 못돼 회수 불가능으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SK텔레콤 등 우량 계열사들이 SK생명에 140억원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 준 사실이 적발됐다. 이밖에 SK해운은 올 상반기에 발행해 계열사가 사들인 기업어음 매매 거래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거래 사실도 공시하지 않았다. SK텔레콤의 통신요금 고지서 발송업무를 맡고 있는 SM데이터를 계열사로 편입하지 않은 사실도 나타났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기아자동차와 INI스틸을 통해 부실위기에 몰린 현대카드에 1,04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부당지원행위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과징금은 겨우 2억2,000만원, LG와 현대중공업은 6,800만원과 9,700만원으로 1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극단적인 대조를 보였다.
◇반응ㆍ평가 엇갈려=평가와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경기침체를 감안한 `봐주기 조사`라는 시각에서 재벌개혁의 후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샅샅이 조사한 SK그룹에 과징금의 90%가 집중됐다는 점에서 공정위 조사기법 한계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재계는 재계대로 `부당거래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공정위의 대대적인 조사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계좌추적권의 유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장항석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에서 LG그룹 2개사에 대해 계좌추적권을 발동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내년 2월 시한이 만료되는 계좌추적권 3년 연장을 추진해온 반면 재계와 한나라당은 이를 반대해왔다.
조학국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조사결과는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를 추진하는 공정위 입장을 뒤집는 결과 아니냐는 지적에 “부당내부거래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연결짓기 힘들다”고 밝혔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계열사를 통한 무분별한 확장, 적은 지분을 가지고 많은 지배력을 행사하는 총수의 전횡을 사전에 막자는 취지고 부당내부거래조사는 계열사간 불공정한 지원행위를 통해 막자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는 별개장치라는 설명이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