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노조전임 임금 '2大쟁점' 대타협 이룰지 관심<br>민주노총 복귀로 '대화' 물꼬 텄지만<br>노사정 입장차 좁히기 쉽지는 않을듯<br>합의 실패땐 분규 증가등 비용 눈덩이
민주노총이 1년여만에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 노사정 대화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다. 특히 현행법상 내년 1월부터 시행해야 하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 허용과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민감한 노동현안 처리가 임박해 있어 민주노총의 대화 참여로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노사로드맵) 방안 추진을 통해 노동 관계법은 지난 96~97년 노동법 개정 파동 이후 10년만에 본격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2007년 노동체제’라고 불릴 정도로 국내 노동시장의 지형을 바꿀 것으로 평가 받는 노사로드맵에 대한 노사정간 견해차가 워낙 커 의견조율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앞으로 수년 이상 국내 노사정관계의 흐름을 좌우할 노사로드맵 협상 전망과 하반기 노사관계를 가늠할 변수들을 전망해본다.
노사로드맵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공약사항이자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추진돼왔다. 노동전문 학자들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이 34개 과제로 추린 로드맵을 지난 2003년 11월 정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미뤄지고 지난해 내내 노ㆍ정갈등이 지속되면서 노사정간의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못한 채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는 법령 시행일이 불과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7월중 합의안을 도출하고 7월말 입법예고를 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조속한 협상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최대한 합의해 처리될 수 있도록 노사정 대표자들이 직접 만나 협상안을 다루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며 협상에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3일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노사로드맵 외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리 확보방안, 공무원ㆍ교사ㆍ교수의 노동3권 보장 등을 다루자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노사로드맵 34개 과제를 25개로 추려 논의하기로 했지만 되레 의제선정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지난 5월초부터 두달 가까이 진행해온 노사로드맵 실무자 협상이 논의 의제를 추리는 수준에 머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의제별로 노사정간 견해차는 좁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의 요구로 초기에 의제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겠지만 결국 복수노조 교섭방안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로 두 가지가 핵심 의제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가장 현실적인 이슈가 될 것”이라며 “법 시행 시기가 임박해 민주노총도 이에 대한 논의를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책임행정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의 경우 현 노동조합법은 내년 1월부터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영계는 지난 97년부터 10년이나 시행이 미뤄져온 이 조항을 내년부터 즉시 시행해야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동응 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조항이 당장 시행될 경우 노동운동이 입을 타격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법으로 이 문제를 강제하지 말고 노사자율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국제적으로 법으로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강제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조합원수 300인 또는 100인 미만 소수 노조에 대해 0.5~1명의 전임자 임금 지급을 허용하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의 절충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핵심 의제인 복수노조 교섭창구와 관련 정부는 일단 노조들간에 자율로 교통정리를 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일정 비율 이상의 지지를 받은 다수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법으로 다수 노조에 배타적 교섭권을 주는 방안을 강제할 경우 소수 노조의 권리가 침해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영계도 일선 현장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와 관련해서는 다수노조 지위 부여 기준, 산별노조와 기업노조의 창구 단일화 등 민감하고 복잡한 현안들이 많아 총론에 합의하더라도 각론에서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태주 노동교육원 교수는 “민주노총이 대화에 참여했지만 지금까지의 교착상태를 되돌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민주노총의 합류로 비정규직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문제까지 더해질 것으로 보여 노사로드맵 합의 처리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 장관의 의지와 달리 합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정부가 논의 시한을 지난 뒤 비정규직법안처럼 독자안을 국회에 제출하거나 현실적인 일정을 감안해 법 시행을 유예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사정 합의처리가 불가능해질 경우 7월말 이후 정부가 내놓을 입법예고안 내용이 올 하반기 노사정갈등 수준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려 할 경우 총력투쟁으로 맞서겠다는 방침이며 민주노총도 7월1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총파업에 이어 11월경 노사로드맵 저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해둔 상태다.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로드맵 법안에 대한 노사정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상당기간 노사갈등의 다원화와 분규 증가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했다. 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새로운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로드맵을 둘러싼 갈등이 겹쳐질 경우 앞으로 몇 년간 분규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참여 주체 모두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상생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
김호정기자 gadgety@sed.co.kr
● 올 夏鬪 어떻게 될까?
산별 전환·韓美FTA등 현안 수두룩, 투쟁강도 '예측불허'
車노조등 대부분 다음달 파업 예정…비정규직 분규도 점차 장기화 추세
올 상반기 노사분규는 철도파업(3.1~4),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3.28~30) 등으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표상으로는 지난해에 비해 분규발생이 20% 이상 줄어들며 안정세를 보였다. 주요 사업장의 임단협투쟁은 5.31 지방선거 영향으로 예년보다 한 달 정도 늦어졌지만 7월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노동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차 등 완성차 4사와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등 주요 사업장이 이 달 대부분 쟁의발생 신고, 파업 찬ㆍ반투표에 나서는 등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본격 달아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투쟁, 원ㆍ하청 갈등, 대구 건설노조, 순천 하이스코 사태 같은 지역 차원의 노사갈등 등 새로운 유형의 분규도 늘어나는 추세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파급 효과가 가장 큰 자동차산업의 경우 완성차 4사가 잇따라 파업을 결의,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지난 95년 이후 해마다 거르지 않고 파업투쟁을 벌여온 현대차 노조는 23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했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9.1% 인상과 호봉제 도입, 사무계약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26일부터 매일 2시간씩 부분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그룹이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도 기본급 8.5% 인상, 정년 1년 연장 등을 요구했으나 회사가 거부하자 22, 23일 파업 찬반투표를 벌였다. 기본급 10.5% 인상과 정리해고 복직자 해고기간 근속 수당 지급 등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건 GM대우차 노조는 20일 대의원대회에서 쟁의행위를 결의했다. 기아차 노조도 기본급 9.1% 인상에 복지기금 250억원 출연, 정년 62세로 연장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벌여왔으나 회사측이 요구안에 난색을 보여 교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부는 자동차 4사의 경우 28~30일로 예정돼 있는 산별전환 투표 결과가 올 자동차업종 임단협 투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 지도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산별전환 투표가 조합원 3분의2 이상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할 경우 임단협 투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만여 조합원이 가입한 금속노조는 금속산업 최저임금 87만7,800원으로 인상, 고용 및 노동조건 변화시 노조와 합의 등을 요구하며 지금까지 사용자측과 10차례 중앙교섭을 벌여왔다. 그러나 협상에 별다른 진척이 없자 19~21일 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결의했으며 26일부터 부분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임금 9.3% 인상, 인력충원을 통한 주5일제 전면실시 등을 요구하며 지금까지 6차례 교섭을 벌이고 있다.
각급 노조의 임단협투쟁과 맞물려 민주노총은 7월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 저지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12일에는 6시간 시한부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각급 노조가 이 시기에 맞춰 집중투쟁을 벌일 것으로 보여 7월 중순과 하순이 올 하투의 절정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통적인 노사분규와 다른 비정규직 처우개선, 원ㆍ하청 갈등 등의 경우 투쟁이 대부분 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뒤 해고된 근로자들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분규의 경우 분규 발생 1년 반을 넘겼다.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기륭전자, KM&I 사내하청과 르네상스호텔 모두 분규기간이 6개월을 넘어섰다.
대구 건설노조의 경우 근로자들이 지역 차원의 협상을 요구하며 20일 넘게 작업을 거부, 65개 현장에서 대부분 정상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해고자 복직 등에 합의한 순천 현대하이스코 협력업체 갈등의 경우도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참여, 10개월만에야 사태가 해결됐다.
민주노총은 이들 비정규, 장기투쟁 사업장의 사태 해결을 정부와 정치권에 촉구하며 연대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장이 노사 분규의 새로운 핵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양상이다.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취약사업장의 경우 분규가 발생하면 장기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 연구위원은 노동계 하투가 산별전환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공장 노조 투쟁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하청업체들의 갈등으로 이중구조화하는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