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190만원짜리 풀 정비 세트 권유에 허위 청구도 다반사

현행 자동차보험 체계의 총체적 모순들이 노정되면서 정부가 연말까지 제도개선의 칼을 대기로 했다. 한 승용차 추돌사고 현장에서 차주들이 사고처리 문제를 의논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아주머니 병원 가시면 무조건 드러누우세요.” 참 황당한 말이지만 이 말을 일반시민이 아니라 교통경찰이 했다면 어떨까. 최근 친지를 찾아 나섰다가 교차로에서 접촉사고를 당했던 가정주부 L씨(여ㆍ37ㆍ성북구 거주)는 실제로 당시 교통을 정리해주던 경찰로부터 이 같은 권유를 받았다. 주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보험료 보상이 별로 많지 않으니 충분히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가짜 환자(나이롱 환자)가 되라는 충고(?)였다. ◇스쳤다 하면 드러눕는 ‘입원 공화국’= 자동차보험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모럴해저드는 이미 한계수위를 훌쩍 넘어섰다. 보험개발원이 조사한 2008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율은 60.6%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교통사고 입원율이 6.4%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서 접촉사고만 나도 병원에 드러눕는다는 말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2008회계연도(2008년4월∼2009년3월)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가짜환자로 추정되는 부재환자 수가 무려 8만8,079명, 보험금 누수액은 약 865억원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치료비로 지급된 과다 보험금은 298억원, 합의금으로 인한 누수 보험금도 567억원이었다. 산술적으로 나이롱 환자를 지금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432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절감시킬 수 있다. 각종 자동차보험 사기로 누수되는 보험금 역시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질병 등의 사전 고지 의무 위반으로 인한 누수 보험금은 약 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매년 1조9,000억원의 보험금이 보험사기로 새고 있는 것이다. 실제 누수 보험금과 보험료를 4인 가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보험사기로 인해 가구당 지불하는 보험료가 매월 14만원씩 늘어난다. ◇정비업체의 가장 큰 물주는 보험사= 올해부터 자동차보험 대물할증 기준금액이 200만원으로 올라가자 가장 신난 곳은 정비업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요즘 정비업체를 찾으면 사고로 차량 일부가 파손되더라도 200만원 한도 내에서 ‘풀 정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다반사”라며 “일부 업체는 ‘190만원 정비세트’와 같은 서비스 품목을 내놓고 운전자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손보사들이 2008회계연도에 교통사고 차량 수리를 위해 지급한 보험금은 3조2,310억원으로 전년보다 2,311억원(7.7%) 증가했다. 차량 수리 보험금이 이처럼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실 이정도는 애교다. 아예 노골적으로 자동차 수리 내역을 허위청구하는 ‘가짜 청구(가청)’와 ‘공장 청구(공청)’를 하는 정비업소도 부지기수다. ‘자동차사고=목돈’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정비업체마다 사고 차량을 견인해오는 기사들에게 수리비의 15~20%를 리베이트 형식으로 건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식전환 및 보험금 누수 감소 노력 병행해야=이처럼 보험금 누수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천문학적인 규모에 달하자 인식의 전환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보험금을 줄이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요양급여 체계 역시 보험금 누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같은 증상으로 같은 치료를 받아도 교통사고 환자는 진료수가 가산율이 높아 일반 환자보다 진료비를 12% 정도 더 내 보험금 지급이 많아진다. 실제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보험종류에 상관없이 진료수가 가산율은 같다. 병상을 보유한 일부 중소병원이 수익을 목적으로 교통사고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교통사고 환자에 있어서는 과잉진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요양급여 제도를 개선하고 심사업무를 일원화해야 병원이 교통사고 환자를 선호하는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나이롱 환자가 많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가입자와 정비업체, 보험종사자, 병원 등 자동차보험과 관련된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병원이나 정비업체가 허위청구를 하거나 보험금을 더 많이 받도록 조장하는 보험종사자들 모두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며 “계약자들도 이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보장받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보험원가를 줄이는 기반 조성도 필요하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보험사들이 초과사업비를 줄이면 보험료를 약 4% 내릴 수 있다”며 “보험료 추가 인하 여력이 있음에도 과당 경쟁을 하느라 사업비만 지나치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