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는 객차와 역 구내에 가연물질 사용을 금지한 세계적 상식을 어긴 결과다(아사히(朝日)신문 2월19일자 사설)” “한국에선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경제성장에 급해 도심 안전관리 시스템을 소홀히 한 결과다(마이니치(每日) 2월19일자 기사)”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1면 머리기사와 사설을 통해 우리나라를 `외모는 선진국, 안전은 후진국`이라며 꼬집었다. 굳이 일본 언론의 시각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의 도시 방재시스템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는 “재난 발생빈도 면에서 외국 선진국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며 “문제는 도심 내부에 방재 시스템이 전무, 한번 사고가 나면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참사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인구의 4%, 매년 재난으로 사망ㆍ부상= 각종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행정자치부가 발간한 `2001년도 재난연감`에 따르면 최근 5년간(97~2001년) 연 평균 30만654건의 재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연 평균 39만5,770명으로 서울시 인구(1,000만명 기준)의 4%에 해당한다. 5년간 연 평균 순수 재산피해액(부동산ㆍ동산, 인명피해액ㆍ북구비용 제외)도 7,523억1,800만원으로 서울시 1년 예산(13조)의 5.7%에 해당된다.
인명피해 등 간접비용과 복구비 등을 합산하면 손실비용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 예로 허술한 도심 방재 시스템으로 피해가 더 커진 태풍 루사의 예를 들어보자. 간접비용을 포함한 피해액이 6조원, 복구비용이 9조원 등 총 15조원으로 항공모함 3대를 매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위험에 노출된 도시민들= 국립방재연구소 김현주 박사는 “도심 재난은 자연재해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고 도시기능 마비 등 연쇄 파급효과를 불러온다”며 “도시민들은 하루 하루를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 박사의 지적 대로 국내 도시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는 런던ㆍ로마 등 외국에서 100여년에 걸쳐 이룩한 도시화가 국내에서는 단 10~20년 만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방재는 산업ㆍ개발화의 뒷전에 밀렸다. 토지는 그대로 둔 채 개발밀도만 높이고 있는 현행 재개발ㆍ재건축 정책과 함께 내진설계가 반영돼 있지 않은 초고층 건물 등이 그 대표적 사례.
실제 서울만 해도 인구 1,100만 명이 모여 살고, 216km의 지하철망과 171km 도시고속도로망, 그리고 9,000Km에 이르는 도시가스 배관망이 깔려 있는 등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인 셈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방재정책= 정부는 95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재난관리법을 재정했다. 또 77년부터 매 5년 단위로 방재기본계획을 수립해 오고 있다. 그러나 방재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우선 방재를 담당하는 부처만 13곳에 이르고 이에 관련된 법령이 100여 개로 통일성과 일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002~2006년 5년간 계획된 방재예산은 40조원에 불과하고 이 중 50% 정도가 예방대책으로 편성돼 있다. 방재연구를 위한 비용은 전무해 서울시가 지난해 고작 7,000만원 정도를 책정했다. 방재 담당 공무원도 지자체별로 평균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특히 이들 방재예산은 국회의 승인을 받는 예비비로 분류돼 있다. 재난 후 사후 처리에 활용될 뿐 예방 등 사전 점검에는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전에 10%의 예산만 투여해도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방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사후 약 방문`식의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게 국내 방재 시스템의 현주소라는 지적이다.
<김현수기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