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노동법 파동으로 시작된 우리 경제의 위기국면은 한보, 진로, 대농에 이어 재계순위 8위인 기아그룹의 부도로 이어져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정부에서는 부도방지협약을 통해 도산으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파장을 분산시키고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한편에서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대기업 부실화의 원인에 대해서도 사람과 입장에 따라 각양각색이어서 바야흐로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은 듯하다. 문제는 이런 백가쟁명의 와중에서 더욱 깊이 주름지는 곳은 바로 중소기업이요, 서민경제라는데 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백가쟁명의 논의들이 민주사회의 대단히 건강한 징표이긴 하나 논의의 관점과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양산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부의 어떤 의사결정은 그 관점과 목표에 따라 정치적이냐 경제적이냐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두가지 관점과 목표가 적절하게 조화되지 못한 의사결정은 결국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논리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과 경제논리에 의한 경제적 의사결정에 대해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무척 많은 듯하다. 정치논리는 곧 힘있는 자, 가진 자의 논리, 뭔가 은폐된 논리로 이해하고 경제논리라면 공개되고 합리적인 논리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도 과거 권위주의 정치시대의 잘못된 유산 때문이나 사실 정치논리야말로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의 논리, 대중의 논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경제논리만 좇아 기아그룹 부도를 방치해버린다면 관련 중소기업이나 그 고용인력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등 강력한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없었다면 우리 중소기업의 현주소는 대기업에 종속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어느 한쪽의 논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올바른 문제해결의 방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