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유선 통신망 인프라를 경쟁사들이 빌려 쓰도록 하는 '필수설비 제공' 제도를 두고 업계의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제도는 SK브로드밴드ㆍLG유플러스ㆍ케이블업체 등 후발주자들이 초고속인터넷ㆍ유선전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KT의 인입관로와 광케이블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논쟁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KT는 "경쟁사들이 KT의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장경쟁 체제에서 한 기업이 투자한 부분을 다른 기업과 공유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반면 SK브로드밴드 등은 KT가 공기업 시절 세금으로 구축한 통신 인프라는 공유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KT와 KTF의 합병이 가능했던 건 KT가 필수설비제공의 의무를 맡는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KT가 이 같은 의무를 성실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KT가 필수설비를 공유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의 여부다. KT는 일부 시장에서 후발주자들과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는 데다 상업용 건물에 각 사 케이블이 연결된 비율을 봐도 KT가 월등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KT는 현재 시내전화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91%이며, 주로 기업들의 전용 초고속인터넷ㆍ전화 서비스를 위해 제공되는 전용회선 시장에서도 51%를 차지한다. 게다가 전기통신사업법상 KT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더라도 필수설비를 후발주자들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필수설비 보유 여부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통신시장의 특성 탓이다. 같은 이유로 해외 각국이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필수설비 제공 의무를 법률로 못박았다. 일례로 서유럽 17개국 중 14개국이 선발 사업자에게 인입관로 공유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필수설비 제공 제도로 인한 투자비 감소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KT는 SK브로드밴드 등이 자사 설비를 더 빌려 쓸 경우 관련 공사를 맡는 공사업체들의 일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KT의 관로를 쓰려면 SK브로드밴드든 LG유플러스든 자사 케이블을 연결하는 등의 공사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KT와 협력 관계인 하청업체들까지 이번 논쟁에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지난달 24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한 '전기통신설비 제공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는 KT와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행사 진행을 막으면서 2일로 미뤄졌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바람에 경찰까지 출동했다"고 전했다.
인입관로는 이동통신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케이블을 건물 내부로 연결하는 일종의 '입구'다. 이미 지어진 건물 같은 경우 새로 땅을 파내고 인입관로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전기통신사업법에 KT의 '의무제공'을 규정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은 KT가 아닌 한국전력의 전봇대를 빌려 통신망을 구축할 수도 있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는 등의 문제로 점점 지양하는 추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