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Book in depth] 북한에 시장경제를 먼저 이식하라

■ 이념과 체제를 넘는 북한 변화의 미래(장대성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탈북자의 '실용적 통일구상'

北 정권체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본주의 도입 돕는게 통일 지름길

보수·진보 진영 논리서 벗어나야


'탈북자'하면 북한 인민의 열악한 인권을 질타하고 전근대적 수령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핵개발, 독재체제를 저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북한을 고립, 압박해야 한다는 남한내 보수진영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탈북자 출신임에도 분단 체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북한 정권을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교류를 통해 시장경제의 '맛'을 점진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설파하는 책이 나와 주목을 끌고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한내의 통일 논의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진보, 보수의 진영논리가 득세하며 첨예한 갈등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터에 북한과 남한에서 번갈아 수십년을 살아보며 있는 그대로 양쪽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의 문화를 접한 한 탈북자의 통일 단상은 음미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60년 이상 서로를 느끼지 못하고 교류없이 떨어져 살은 어느 한쪽의 이론적 통일론이 아니라 두 쪽을 다 경험한 실용적 의미의 통일 구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권력의 산실'로 불리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나왔지만 지난 1997년 탈북한 저자는, 천신만고 끝에 2001년에야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북한에게 민주주의는 현 김정은 체제의 종언과 같은 의미라고 말한다. 여태 개혁개방에 나서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시장경제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이에 동반될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를 피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 보수진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없이 북한의 변화도 없다고 확신한다. 다른 선택은 없다. 하지만 이 두가지가 짝을 이뤄 북한에들어가는 것은 내부적 인민혁명으로든, 외부적 군사·경제적 압박으로든 현 집권세력이 무너지기 전에는 어렵다. 진보도 새로울 건 없다. 철저히 북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재적 접근'이든 아니면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이든 북한에 대한 이해와 용인이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영에 기여할 것이라며 타협과 협력의 대상으로 본다.


이같은 두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말고 저자 장대성 씨는 북한에 시장경제를 먼저 이식하라고 강조한다. 지금 북한주민에게 절실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줄 시장경제가 반드시 민주주의와 함께 가야한다는 법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북한이 점진적인 변화의 길을 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체제 전환의 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고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정치력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과 유사한 공산당 집권체제로서 사회 전체에 대한 당의 영도를 정치체계의 골간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중국 공산당이 개방개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구현하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 처신과 변신의 행적은 북한에게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관련기사



물론 이 가운데 현재의 체제가 더 공고해지고 기득권에게만 경제력이 집중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어찌보면 탈북자 출신의 대기업 사원에게서 듣기는 어려운 논의다. 그런만큼 북한의 현 체제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강화시킬 수도 있는 제안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북한 지배세력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리 없다면, 통일을 위해서는 오히려 현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가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는 일정 이상의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는 남북 대화 역시 마찬가지로 봤다.

이같은 주장은 북한의 현재 경제상황이 우리의 1960년대와 비슷하다는 점, 우리가 그랬듯 정부 주도의 강력한 계획경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게다가 북한이 농업이나 경공업이 아닌 중공업 중심이라는 것, 사실상 모든 자본을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구조 역시 같은 결론을 이끈다.

나아가 저자는 프랑스나 독일, 스웨덴 역시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였고, 한국은 물론 대만, 싱가포르 같은 동아시아 신흥국의 성공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한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결합이 후진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모두가 잘 아는 얘기다.

과거처럼 김일성-김정일을 신격화하는 것은 안되지만, 분권화된 수령제와 일당통치 체계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오히려 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시장경제는 필수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보호와 법치주의 발전을 이끌고, 이 가운데 시민사회가 자라난다. 민주주의가 이식될 토양이 다져지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처럼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에 순응된 경직된 사고체계, 수직적인 상명하달식 운영체계, 장기간 절대 부분을 차지해온 계획경제 체제, 생산과 판매 및 소비의 순환이 거의 마비된 경제 현황 등을 감안한다면 말단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만으로 자생적인 회복과 발전을 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앙의 명확한 비전과 실천 의지에 기초해 통일된 로드맵을 순차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