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앞서가는 금융범죄
이병관 사회부 기자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금융범죄는 날로 지능화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5일 검찰이 발표한 한국철도시설공단(KR)과 농협이 연루된 파생상품 비리사건이 그 단적인 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조원이 넘는 외자를 유치한 KR가 환율과 이자율 변화에 따른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통화스와프 등 파생상품을 발행했고 이를 농협이 사서 도이치은행에 되팔면서 36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판매차익의 절반인 180억원이 컨설팅 수수료로 지급된 것이다.
수수료율이 너무 높은 것을 수상히 여긴 금융감독원이 이 거래에 관계된 사람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일단 관련자 7명의 알선수재 또는 횡령 등의 범죄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구속한 뒤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 파생상품 수사를 보면서 검찰이 범죄혐의와 단서포착에 앞서 당연히 숙지해야 할 파생상품 개념과 시장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검찰은 수사브리핑에서 "파생상품은 제로섬 게임이니 거래 과정에서 누가 피해를 봤는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거나 " KR가 헤지과정에서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거래자를 선정한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검찰의 발표는 시장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이 사용한 통화스와프 등 국내 파생상품은 날로 그 규모가 급팽창하는 수백조원의 시장으로 전화 등을 통해 1대1로 금리 환리스크를 주고 사는 대표적인 장외시장(OTC)이다. 헤지 기술이 없는 KR는 농협에 위탁했고 농협은 다시 국내 파생상품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도이치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 재위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농협과 도이치은행은 파생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리스크가격(위험을 담보받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과 KR가 제시한 리스크 가격 사이의 차익을 챙긴 것이다. 누가 이득을 보면 누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거래가 아닌 것이다. 또 다양하고 복잡한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장외시장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몇몇 외국계 투자은행간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
금융범죄는 날로 지능화ㆍ첨단화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나는 금융범죄를 검찰이 뛰면서 쫓아가는 형국이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검찰은 날로 고도화되는 금융범죄에 대한 전문 수사능력을 더욱 보강해야 할 것이다.
comeon@sed.co.kr
입력시간 : 2004-08-12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