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소비에트스타일 협상전략

북한의 핵실험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던 한반도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으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대북 제재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임을 선전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다분하지만 일단은 ‘벼랑 끝 전술’이 먹혀든 셈이다. 미국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고, 남한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적전 분열 양상에 김정일이 내심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완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금융 제재도 다소 완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위기 때마다 ‘벼랑 끝 전술’로 밀어붙인 뒤 협상을 통해 입지를 강화하는 북한의 강온 양면 전략에 국제사회가 요동치는 형국이다. 협상에 있어서 전략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협상 당사자들은 협상 상황과 협상 자원을 고려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대개 상대적으로 힘의 열세에 놓여 있거나 불리한 여건에서는 입장협상(positional negotiation) 전략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동일 상대와 장기적으로 협상이 계속되는 국제 관계에서는 신사적 규범과 협상 윤리가 작동하는 원칙협상(principled negotiation)이 경성입장협상보다 우월한 전략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현실 세계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협상 전략의 대표적인 경우가 소비에트 스타일이다. 냉전 체제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했던 소비에트식 협상 전략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협상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의 한 방편으로 여긴다. 합의문도 원칙적인 수준에서 애매모호하고 이중적인 메시지를 담게 한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얼굴을 붉히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감정 전술도 자주 등장한다. 상대방의 양보를 약함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은 좀처럼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서방 측 협상가들이 의제 선정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뻔뻔한 제의에 맞대응하지 못해 협상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소비에트 스타일은 국제 협상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자기이해만 고집하며 생떼를 쓰거나, 목소리를 높이며 무리하게 요구하는 민원인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관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 미국의 전략이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에트 스타일과 유사한 측면이 관찰된다. 우선 지금까지 미국과 체결된 FTA를 보면 상대국의 보호장벽을 허물어 미국 자본과 투자자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면서도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주의는 철저하게 지키는 일방주의적 협정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전략적 거점 역할을 해온 국가들을 대상으로 군사안보동맹을 강화하는 매개체로 FTA가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ㆍ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에 열린 4차협상에서 미국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에 눌린 우리 정부의 수세적 대응은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일정에 쫓겨 무역 구제 분야에서 연말 타결을 목표로 서둘러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한미 FTA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나 미국 국내 정치 상황 등과 맞물려 상당기간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아무리 한ㆍ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4대 선결 과제라며 스크린쿼터와 쇠고기 등을 그렇게 선뜻 내준 것은 앞으로도 미국 입장에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는 여지를 만들고 만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협상 전략에 맞서 우리 정부도 이제는 시간을 갖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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