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청복(淸福)

이번 추석에도 단골 이발소를 찾았다. 추석을 앞두고 많이 붐빌 줄 알았는데 한 사람 다음 바로 내 차례가 됐다. 추석인데 사람이 별로 없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주인은 "옛날 말이지, 추석이라고 특별히 이발하는 풍습은 이제 사라진 것 같다"고 하신다. 명절 앞이면 북적대는 이발소에서 한참이나 순서를 기다려가며 명절맞이 이발을 하던 추억이 새롭다. 내가 즐겨 다니는 단골 이발소는 지난 60~70년대 그때 그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우 허름하고 낡은 곳이다. '이발소 그림'이라고 칭하는 시골풍경화, 낡고 오래돼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라디오, 손님용으로 비치해놓은 2~3년 전에 발간된 몇권의 여성잡지와 주간지, 오래돼 타월이라기보다 행주처럼 된 수건, 때묻은 가위와 빗 등등.. 오천원의 이발료도 아까울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이발소지만 이 집을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 그때 중년이던 주인 아저씨는 이제 7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되셨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면도를 해주는 여자 종업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모든 일을 맡아 하신다. 따라서 대부분의 손님은 면도 없이 머리를 깎고 씻고 말리기만 해주고는 끝이지만 나는 오래된 단골이라 면도까지 해주신다. 할아버지의 거친 손으로 매만지는 면도는 처음에는 매우 거부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 또한 익숙해져 있다. 이 주인어른은 항상 표정이 밝고 늘 명랑하시어 갈 때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신다. 언제 시골에서 올라왔느냐, 지금 오는 길이냐, 그곳의 수해는 어느 정도인가 등등 인사도 빠지지 않는다. 이발솜씨도 뛰어난데 내가 이 집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기술 때문이다. 왜 그리 젊게 보이시냐고 물으면 별다른 욕심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없고 혼자 경영하니 종업원 월급걱정도 없고 기관단체의 구내 이발소이니 별로 나가는 것도 없어 그저 오는 손님이 있으면 받고 없으면 놀고 그러니 마음이 늘 편하시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서도 일거리가 있고 또 수입이 있으니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신다. 70세가 넘으시어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이발소장님으로 건재하신 이 어른에게서 일하는 즐거움과 그로부터 나오는 청복(淸福) 같은 것을 느끼며 나도 직장을 그만두면 이발기술이라도 배워 이렇게 노년을 재미있고 밝게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추석맞이 이발을 끝내고 나왔다. /강신철<경남은행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