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의 캐시카우 오늘과 내일] 1-6. 리콜은 독인가-준비 안된 소비자

지난 4월 10일. 현대ㆍ기아자동차는 뉴EF쏘나타, 카니발, 카렌스, 리오 등 주력차종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상 차량 수만도 총 2만7,473대에 달했다. 리콜 이유는 ABS를 장착한 자동차가 브레이크 작동 때 소음이 발생하거나 스펀지현상(제동페달이 깊게 들어가는 상태)이 발생해 제동거리가 길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치도 못한 일”이라며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상의 결함을 인정하고 리콜을 결정함으로써 제품을 생산한 자동차업체는 제품의 하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진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리콜에 대한 인식 여전히 낮아=지난해 국내 자동차 리콜 대수는 120만대를 넘어섰다. 양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다가선 것이다. 제작결함에 따른 리콜은 자동차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사유로 인해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다수의 자동차에 발생한 경우에 실시되는 만큼 소비자가 반드시 리콜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리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적극적이지 못하다.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2002 자동차 리콜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총 리콜 대상차량 129만2,416대 가운데 시정대수는 31만916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시정률이 24.1%에 그친 것이다. 다시말해 10대 리콜 대상차량중 불과 2~3대 정도만 리콜에 응한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지난 91년 리콜제도가 처음 도입된 후 10년이 넘었고 자동차업체들이 리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리콜에 대한 소비자들은 인식은 부정적인데다 참여도도 낮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리콜 생활화=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94~97년 생산된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밴 등 무려 177만대에 대한 리콜에 들어갔다. 자동차 전면 유리 와이퍼의 회로판 교체를 위한 조치였다. 자동차 리콜이 보편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 리콜 시행률이 100%를 넘어선다. 이는 자동차업체들이 출고된 차량의 결함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발견 즉시 자발적으로 리콜하는 한편, 많은 소비자들이 자동차 결함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결과다. 미국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차량들이 경쟁하는 각축장인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자동차의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결함을 감추고 리콜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이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 지난 2001년 포드가 자사의 차량에 장착된 타이어의 결함사실을 오랫동안 감춰온 사실이 들통나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연간 평균 300여종 2,000만대의 자동차가 리콜되고 있는 등 거의 일상화돼있다”며 “일반 소비자들도 리콜에 대한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리콜 많은 제품에 믿음 가져야=리콜은 자동차회사의 책임감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지난해 A사의 한 차종은 무려 10여회 이상 공식적인 리콜 조치가 이뤄져 단일 품목으로 최다기록을 세우는 불명예를 안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을 구입한 후 10번 넘게 애프터서비스를 받기 위해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 회사는 그만큼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내놓을 신차에는 똑 같은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교훈을 얻게 됐다. 올들어 이미 19종의 차량이 리콜을 진행중이어서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보다 더 많은 자동차가 리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형식승인제도가 `자기인증제도`로 전환됐고, 지난해 7월부터 제조물책임법(PL)이 시행되는 등 기업들의 제조품에 대한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진 데 따른 것이다. 자동차업계 안팎에서는 리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성숙한 리콜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자동차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충우 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은 “리콜은 결함에 따른 사고로부터 생명을 보호해주는 소비자보호제도”라며 “정부나 소비자단체도 업체들과 함께 리콜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면 편리한 리콜 정보]건교부등 관련사이트 이용 바람직 ◇리콜정보는 이곳에서… 리콜은 건설교통부 자동차 관리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소비자는 건교부 리콜사이트 (www.car.go.kr)에서 리콜 정보 및 현황, 리콜 관련 민원 접수 등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 보호원 역시 자동차 결함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자동차 알림방 홈페이지(www.cpb.or.kr)를 개설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에는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 정보를 제보하도록 `자동차결함신고`란과 소보원의 자동차 품질개선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자동차 품질개선 및 리콜 소식`란 등이 마련돼 있다. 차량을 수리했는데도 결함이 개선되지 않거나 그 결함이 다수 차량에 공통적으로 나타날 경우 별도의 기재 양식으로 신고하면 된다. ◇제작결함과 개별하자 구별해야… 소비자들의 경우 리콜 조치를 필요로 하는 `제작결함`과 개별제품에만 나타나는 `개별하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제품결함을 곧 리콜로 판단하는 것도 리콜 범위를 매우 넓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리콜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제작결함은 자동차 제작 등의 과정에서 비롯돼 안전기준에 적합치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다수 자동차에 발생한 경우로 소비자 불만이 전국적,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특징을 갖는다. 반면 개별하자는 승객 편의장치인 에어컨, 라디오, 창문손잡이, 차량도색 등의 고장으로 리콜대상에서 제외되며 해당 차량제작사의 A/S센터를 이용, 정비를 받으면 된다. ◇리콜 관련법 자동차 리콜과 관련된 사항은 `자동차관리법`과 `대기환경보전법`등 2개 법령에 규정돼있다. 자동차관리법상의 리콜 사유는 “자동차 제작과정에서 비롯된 사유로 인해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계속적으로 다수의 자동차에 발생하는 경우”로 명시돼 있다. 예를 들면 한 회사의 동종 차량에 엔진오일 누수 현상이 여러 차량에서 동일하게 발생한다면 이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대기환경보전법령 역시 환경규제를 위반하는 자동차운행을 막기위해 리콜 근거조항이 마련됐다. 이 경우 리콜은 자동차회사가 스스로 결함을 인정해 실시하는 `자발적 리콜`과 결함이 확인됐는데도 시정조치가 없어 건설교통부나 환경부장관이 직접 시정명령을 내리는 `강제적 리콜`등 두 가지가 있다. [세계 자동차社 사례] 결함 은폐기업들 발붙이기 어렵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 일본에선 `리콜`에 소극적이거나 이를 은폐하려는 기업들은 발붙이기 조차 어렵다. 미국 포드사와 일본 미쓰비시의 리콜 사건이 그 단적인 예다. 세계 2위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는 지난 2000년 여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파이어스톤사에서 만든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미국 내에서 판매된 65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2001년에는 미국 교통안전국의 타이어 결함 지적에 따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추가 리콜을 실시했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 여파로 포드사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결함이 있는 1,300만개의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30억 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적자폭이 확대돼 주가는 반토막 났다. 그러나 추락한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 상실 등의 피해는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 훨씬 막대했다. 포드는 이 기간동안 미국 시장 점유율이 1.5%나 떨어져 최고경영진까지 교체하며 사태수습에 나서야 했다. GM 대우차 관계자는 “당시 포드 자동차가 문제가 제기된 타이어부문에 대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해 리콜에 나섰더라면 충격은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사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결함 은폐 사건이 터졌다. 미쓰비시사가 지난 77년 이후 연료누출과 브레이크의 잦은 고장 등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된 소비자 불만을 은폐해온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것. 미쓰비시는 이때까지 단 한 차례의 리콜도 실시하지 않았고 내부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운전자를 사지에 몰아놓고 모른 채 했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미쓰비시사는 그제서야 63만대의 자동차 리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 번 떨어진 신뢰는 만회하기 어려웠다. 이 사건파장으로 미쓰비시 주가는 2000년 8월 29일 단 하루만에 20% 가까이 폭락하기도 했다. 미쓰비시는 다음해인 2001년에도 일본과 미국시장에서 135만대의 자동차에 대해 리콜을 실시, 신뢰도 회복에 안간힘을 썼으나 지금까지도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차협회 관계자는 “포드, 미쓰비시 사건은 소비자가 리콜에 적극적인 기업에 대해 호감과 신뢰도가 높아지는 반면 반대의 경우엔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조영주기자 y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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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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