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유류세와 죄악세

죄악세(Sin tax)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008년을 돌이켜 보자. 담배세와 주세를 인상해 제품값을 높여 소비를 줄여보자는 주장이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채택한 정책이었지만 여론의 저항은 거셌다. '서민의 기호품으로 세금 뜯을 궁리만 하냐'는 논리 앞에 정부도 정치권도 무릎을 꿇었다. 최근의 유류세 인하 논쟁을 보면서 죄악세 논란이 떠올랐다.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논리는 결국 하나다. '기름값에 서민이 고통 받는데 정부는 왜 세금을 안 내리냐'는 것이다. 부자들이 주로 내는 종합부동산세와 소득ㆍ법인세는 깎아주면서 유류세는 왜 안 깎아주느냐는 주장 앞에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감세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세금 깎아 준다는 데 싫다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최근 논쟁은 앞뒤가 뒤바뀌었다. 유류세를 깎아주는 게 중장기적으로 옳은 정책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탄소세를 매기겠다고 정부가 야심 차게 선언한 게 2년 전이다. 불과 3개월 전 전기대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전기료가 싸서 벌어진 일'이라며 에너지 정책 틀을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물가대란과 국제유가 상승이 계속되자 시도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이다. 추세적으로 국제유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땅에 묻힌 석유는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들썩일 때마다 유류세를 인하한다면 논리적으로 유류세는 결국 0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류세 인하로 헐어낸 국가재정은 반드시 어디에선가 메워야만 한다. 구미 선진국들이 탄소세를 거둬 신재생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쏟아 부을 동안 고작 유류세 인하나 검토하는 것은 국가의 장기적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이다. 정부 출범 초기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무리하게 세금제도에 손을 댄 후유증을 죄악세와 유류세 논란으로 톡톡히 겪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부동산 경기진작을 시키겠다고 취득세를 50%나 깎아준 마당에 세금 깎아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쪽이 바보라고 손가락질 당할 판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생색내기 앞에서 나라곳간 자물쇠는 갈수록 헐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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