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산은 "쉐보레 유럽 철수 좌시 않겠다"

부실 파악위해 GM에 유럽법인 회계자료 긴급 요청<br>"한국 철수 노린 계산된 행동… 2대주주로 제어할 것"


"GM 얘기 그대로 못 믿어" 진상파악 통해 감원 차단
한국GM 생산량 20% 줄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예상
유럽법인 실적악화 사실 여부 경영 문제 없었는지 면밀 검토


산업은행이 2016년부터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를 철수하기로 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결정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은은 이를 위해 문제가 되고 있는 GM유럽 판매 법인의 경영 부실 여부와 원인 파악을 위해 GM 측에 관련 자료를 긴급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은은 특히 GM 측의 이번 결정이 일감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GM 측의 고도로 계산된 행위라고 보고 한국GM의 2대주주로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강구할 방침이다.


산은이 이처럼 강경 자세로 나섬에 따라 지난해 지분 매각을 놓고 벌였던 산은과 GM 간의 충돌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국GM의 2대주주(17.02%)인 산은은 GM 측에 이번 브랜드 철수 계획과 관련해 유럽 판매 법인의 자산·부채 내역 등이 담긴 재무 회계 자료 등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GM 측이 유럽에서 쉐보레 철수 결정을 내린 주요 근거로 내세웠던 유럽판매 법인의 실적 악화가 사실인지를 회사의 내부 재무·회계자료 등을 검토해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산은은 자료 검토 과정에서 한국GM의 계열사인 유럽 판매법인이 쉐보레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경영상 부실은 없었는지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GM 측이 유럽에서 쉐보레의 판매실적은 부진한 반면에 마케팅비는 계속 늘어 이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면서 "그들의 주장이 실제로 맞는지 따지기 위해 자산· 부채 내역과 최근 계속된 손실의 원인과 대책, 그리고 법률검토 여부 등의 자료를 요청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산은이 강하게 나오는 배경은 GM의 이번 결정으로 유럽에서 판매 중인 쉐보레 차량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한국 GM의 타격이 불가피하고 인력 구조조정까지 뒤따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GM은 약 78만대 자동차를 생산해 이 중 18만 6,000대의 쉐보레 차량을 유럽에 수출했다. 2016년부터 유럽 수출이 중단되면 지금부터 2년간 국내 GM공장의 생산량이 약 20% 줄어든다. 특히 유럽 수출차를 주로 만드는 군산공장의 가동률(50~60%)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GM 측은 강하게 부인하지만 일감 감소에 따른 인력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산은은 국내 자동차 산업 및 고용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GM 측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방침이다.


한국GM은 현재 부평·창원·군산 등 3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3차 협력업체까지 고려하면 근로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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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은 이런 점을 고려해 그동안 업계 일각에서 한국GM의 철수설이 불거질 때마다 이를 잠재우며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산은은 지난 2010년 GM과 맺은 특별 결의 요건에 따라 산은 동의 없이는 GM 측이 국내 생산라인 등 자산의 5% 이상을 관계사에 매각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산은이 GM의 핵심 의사결정에 대해 일종의 비토권(거부권)을 가진 셈이다. 이 때문에 GM은 한국GM을 100% 자회사로 만들기 위해 산은 보유 지분 인수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산은의 거부로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 10월엔 팀 리 당시 GM 해외사업 총괄사장이 강만수 당시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직접 만나 산은의 지분 인수 의사를 전달했고 최근까지도 여러 경로를 통해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GM 입장에서 산은은 '눈엣가시'인 존재다. 산은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투자 자산을 매각해 회수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때는 국내 자동차 산업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같은 국익을 고려해 매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이런 방침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GM 측이 이번 경우처럼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국내 공장의 생산 물량을 줄여나갈 경우 이를 막을 방안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례로 쉐보레의 유럽 수출 중단으로 당장 한국GM의 생산량이 20% 가까이 줄고 인력구조조정까지 불가피하지만 산은은 이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생산시설 일부가 이전되는 효과와 다름없지만 명목상 산은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GM의 이사회 구성은 대주주인 GM 측이 10명 중 7명을 차지하고 있고 산은 추천 인사는 3명에 불과하다. 산은 관계자도 "국내 생산공장 이전과 같은 큰 사안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이기 때문에 막을 수 있지만 그 외의 경영상 필요한 일상적인 이사회의 의사 결정까지 막는 것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GM 입장에서는 한국은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한국에서 철수하고 싶어도 산은이 버티고 있어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번 경우처럼 한국 공장의 일감을 줄여가는 식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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