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금융 지형이 변한다] <2부> ④·끝 소비자보호가 승패 가른다

"고객이 존재이유" 금융사들 불만제로·신뢰회복 팔걷었다<br>당국 불완전판매 규제 추진에 금융권도 "고객만족이 최우선"<br>정책·전략 패러다임 일대전환<br>업계, 상품기획부터 민원 대비 고충처리센터 확충 등 잇따라

월가 점령시위가 전세계로 퍼져 나가던 지난해 10월 국내 금융소비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가면을 쓰고 금융자본의 탐욕을 비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소비자 주권에 눈을 뜨자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소비자보호가 지속성장의 열쇠' 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서울경제DB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지난해 여름 전세계의 이목은 뉴욕 월가에 집중됐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가에서 '99%'라고 자칭하는 수천,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금융권의 탐욕을 지탄했다.


월가 시위의 여파는 곧바로 국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사들의 폭리와 횡포에 침묵하던 금융소비자들이 지구 반대편 시위를 도화선으로 삼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금융권에 대한 국내 금융소비자의 불신과 불만이 싹튼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의 키코(KIKKO) 상품 불완전판매로 하루아침에 부도로 내몰린 중소기업을 비롯해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로 쌈짓돈을 날린 투자자까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특히 저축은행들의 총체적인 부실과 모럴해저드는 금융권에 대한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금융권의 부실과 탐욕에 따른 피해는 결국 금융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금융권의 '탐욕스러운 민낯'을 목격한 금융소비자들이 서서히 금융소비자 주권에 눈을 뜨기 시작한 셈이다. 최근 이와 같은 분위기에 금융당국과 금융사들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기 반성과 함께 '소비자보호가 지속성장의 승패를 가를 열쇠'라는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

◇소비자 중심으로 패러다임 변한다=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올해는 따뜻한 금융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따뜻한 금융'을 그룹의 모토로 제시했다. 금융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대표적 징후다. 금융사 건전성 위주로 돌아갔던 금융정책이 소비자 권익보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금융당국이 선봉에 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했다. 불완전판매 규제 및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치 등이 골자다. 업권별 규제를 기능별 규제체계로 전환해 규제공백을 최소화했고 규제를 위반하면 과징금을 물게 해 부당이익을 환수하기로 했다. 분쟁조정ㆍ금융교육ㆍ민원처리 등을 전담할 금융소비자보호원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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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보호가 취약하면 금융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금융정책이나 금융사의 전략이 과거 건전성 관리 위주에서 소비자보호로 이동하고 있다"며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뿔났다…소송 봇물 예상=패러다임의 변화는 금융소비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소송이다. 지난해 3,000여명의 소송단을 모집해 은행 등 금융사들의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청구 소송을 주도한 금융소비자연맹은 올해 상반기에도 주요 소송들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적발된 주요 생명보험사들의 예정이율 및 공시이율 담합과 관련해 오는 2월10일 이전에 집단소송을 낼 예정이다. 현재 100명이 넘는 소송단을 모집한 상태이며 금소연은 추가로 소송단이 모집되는 대로 2차ㆍ3차 추가 소송도 계획하고 있다. 은행들의 '꺾기(구속성 예금)'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2~3월 두달간 실태조사에 착수한 뒤 4~5월께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재 금소연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상대로 보다 광범위한 피해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등 유관기관에 협조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금소연 관계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소송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금융소비자들의 권익이 향상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 달래기 나선 금융사=금융사들도 소비자보호를 경영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조준희 행장이 2010년 12월 취임 당시부터 "고객은 은행의 전부이자 존재이유"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한 '펀드 미스터리 쇼퍼'제도 등을 운영하는 한편 상품 기획ㆍ개발단계부터 민원 전담부서와 협력, 향후 발생할 민원에 대비하고 있다.

금융권 최초로 '고객만족센터'를 설립한 신한은행 역시 임원들이 직접 고객의 민원을 듣고 있다. 또 '불만처리 에스컬레이션제도'를 둬 일정기간이 지나도 처리되지 않는 민원은 상위 전결권자에게 자동으로 통지, 신속한 민원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완비해놓았다.

이밖에 최근 은행들이 고객편익을 위해 자동화기기(ATM) 수수료를 일제히 내린 데 이어 대출금리 인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카드사들은 장기 논란거리였던 수수료 체계를 근본부터 뜯어고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과거 금융사들이 수익률을 지상최대 과제로 여겼지만 최근에는 고객만족 역시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금융산업의 경우 고객의 신뢰와 소비자 보호를 배제하고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만큼 더 많은 책임과 역할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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