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4월 5일] 총재와 천재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훗날 여러 평가가 나오겠지만 이 총재의 천재적 비상함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서울대 상과대를 수석 입학했던 이 총재는 BOK에선 '수의 천재'로 통했다. 웬만한 통계, 특히 과거치까지 또렷이 기억해 실무진을 당혹시켰던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천재적인 암기력은 환갑이 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한은을 2년간 출입하면서 이 총재와 종종 사석에서 대면했던 기자도 그가 수많은 도로 번호를 줄줄이 외우는 한편 천체ㆍ물리ㆍ역사 등 다방면에서 번뜩였던 천재성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기에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직관력과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읽기 등은 이 총재를 천재로 각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세간의 이 총재 평가가 두드러졌던 부분은 천재적 기질보다 총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이다. 모든 분야를 꿰뚫고 있었지만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문제의 맥을 짚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고독한 승부사를 자처했다. 금융위기초 1%포인트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든 일이 대표적이다. 그래서인지 한은맨들은 이 총재야말로 41년 재직 중 총재직이 가장 어울렸다고 말한다. 상사의 회식 참석 요구를 번번이 뿌리쳤던 주니어 시절이나 92년 자금부 부부장 당시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투신사 특융을 반대했던 일,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부총재직은 비유컨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총재 돼서야 비로서 맞춤 정장을 입었다는 평가다. 모 금통위원은 외부에서는 몰랐지만 이 총재를 가까이서 접해 보니 그처럼 총재 역할을 잘 해 낼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전했다. 공교롭게 한은은 천재 총재를 떠나보낸 자리에 다시 천재 총재를 맞게 됐다. 김중수 신임 총재는 경기고가 낳은 3대 천재로 불릴 정도로 명석한 두뇌로 정평이 나 있다.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박사로, 전공인 거시경제 외에도 미시정책ㆍ국제금융 등 경제 전반의 내공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이다. 과연 김 총재가 천재성을 드러낼 지, 아니면 독보적인 총재직을 수행할 지 미지수지만, 4년 뒤 역대 최고 총재였다는 이 총재의 명성을 뛰어넘는 총재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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