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에 사는 직장인 김모(44)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2명의 학원비를 아껴 개인연금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부인의 반대에 부닥쳤다. 김씨는 한 달에 70만원씩 들어가는 자녀 학원비가 은퇴준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녀 교육에 열성인 아내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자녀 교육비나 결혼 자금, 주택 대출자금 등에 밀려 은퇴설계는 언감생심인 경우가 허다하다. 자녀 교육이나 주택 마련 등을 위해 은퇴준비를 희생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1일 신한은행 은퇴연구팀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09년) 결과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부모의 89.9%는 '아이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 2009년 기준으로 자녀 1명을 낳아 대학 졸업까지 드는 총 양육비는 2억6,204만원. 자녀가 2명이면 양육비는 5억2,408만원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신한 은퇴연구팀은 은퇴설계를 막는 최대의 적으로 주저 없이 자녀 양육비를 꼽았다. 은퇴준비자들 대부분이 은퇴설계와 자녀 양육비 중 자녀 양육비를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한 은퇴연구팀 관계자는 "미래자산을 포기한 채 교육시킨 자녀가 부모의 생계를 책임지기를 바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자녀들에게 노년에 손을 벌리지 않는 부모가 최고의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내 집 마련도 은퇴설계의 걸림돌 중 하나로 지적됐다. 어렵게 빚을 얻어 장만한 아파트는 은퇴 이후 정기적인 소득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동산 불패신화가 무너진 상황에서 무리해서 집을 사면 평생을 빚에 시달릴 수도 있어서다.
신한 은퇴연구팀은 "어렵게 빚 갚으며 장만한 아파트가 은퇴 이후 정기적인 소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서 "대출은 공돈이 아니므로 주택 구입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퇴설계에 대한 인식 부족도 은퇴준비자의 과감한 결정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은퇴준비의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다 보면 '현금흐름 부족'이나 '인플레이션 위험' '장수 위험' 등 각종 투자위험과 부닥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면 투자에 앞서 금융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중 연금체계'를 갖추는 게 은퇴설계의 기본이다.
신한 은퇴연구팀 관계자는 "적절한 현금흐름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 위험을 고려하면서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됐을 때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를 현명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은퇴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