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년만에 모뎀분야 선두그룹/국내 첫 VDM개발 등 첨단기술 자랑/올 매출 작년비 3배인 70억 고공성장김만덕 C&C엔지니어링 사장(40)은 남들이 평생 한번도 하기 어려운 창업을 두 번이나 경험한 경영인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그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기술로 먹고 사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C&C엔지니어링은 기술집약적 정보통신기기 전문 제조업체. 핵심적인 통신장비인 모뎀생산에 주력해 오며 설립 2년여만에 데이터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로 탄탄한 기반을 다진 유망중소기업이다.
C&C엔지니어링의 비약적 성장세는 매출이 말해준다. 지난 94년 9억7천만원. 95년 22억5천만원. 올해는 7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초고속성장세다.
지난 92년 3명으로 출발한 C&C엔지니어링의 직원수도 지금은 60여명으로 불어났다. 거의 모두가 엔지니어다.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압박감때문에 기업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 순간도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김사장의 기술개발에 대한 집착은 누구보다도 고집스럽다.
김사장은 10여년전만해도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75학번인 그는 ROTC출신 장교로 군대를 제대한 지난 81년 금성전기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당시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모뎀분야를 맡았다.
그는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되어 2천4백bps모뎀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모뎀이 통신하드웨어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직장 상사들에게 사업계획서를 몇 번이고 작성해 보고도 해보고 설득도 했죠』
그러나 당시 회사는 그의 의견을 묵살해버렸다. 모뎀팀은 언제나 찬밥이었다. 이유는 돈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대기업이란 이런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이 비대해 시장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조직이 대기업이었습니다.』
뭔가 해보려다 회사라는 높은 벽에 번번히 좌절당한 김연구원은 87년 ROTC선배로 당시 통신기기총판대리점을 운영하던 고시연 현자네트시스템사장과 금성전기연구소 직원 한명과 함께 자네트시스템을 창업했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직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제서야 모뎀이 유망한 사업분야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집요한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자네트시스템은 당시 모뎀선두업체였던 KDC정보통신, 데이타콤, 콤텍시스템등을 위협하며 창업 몇년만에 1위업체로 올라섰다. 김사장이 자네트시스템에 있을 때 개발한 기술만 1백개가 넘을 정도였다.
『납품키로 되어 있던 모뎀에 이상이 발생해 6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제해결에 뛰어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정열적으로 사업에 몰두하던 김사장은 그러나 얼마안있어 창업동지들과의 갈등을 겪는다. 그가 바라는 회사는 기술집약형 기업이었는데 회사가 시간이 지나며 지나치게 영업위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는 또 한번 창업을 결심하고 지난 92년 역삼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지금의 C&C엔지니어링을 차린다. 당시 창업멤버도 김사장을 포함해 모두 3명이었다. 경기가 하강기로 들어서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때 준비해야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제 2의 창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C&C엔지니어링만은 기술을 먹고 사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기술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국제.시외전화 품질측정기(LQMS)개발, 전화선을 이용해 데이터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음성데이터다중화모뎀(VDM) 국내 최초 개발. 국내 최초 28.8Kbps고속 모뎀 개발...」
최근 국내 최초로 개발한 1.92Mbps급 초고속모뎀에 이르기 까지 그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모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통신시장의 급팽창추세에 맞춰 모뎀의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김사장은 내다보고 있다.<박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