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신뢰가 중요한데 한국 증시는 외국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얼마 전 메릴린치증권의 2인자에 올라 금의환향했던 김도우 사장은 한국 증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신뢰 부족을 꼽았다. 한마디로 한국증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와 기업들은 그 동안 공정공시와 투명성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신뢰회복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펼쳤고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하지만 외국인은 물론 국내 투자자들의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환매중지라는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고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관과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조성하는 기업, 불공정거래 행위에 가담하는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투자자들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500에서 1000사이를 오가는 주가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비자금사건과 각종 게이트, 여기에 정치불안까지 복합된 상황에서 증시의 신뢰회복은 요원하다”며 “이런 요인들이 하나씩 제거돼야만 증시로 자금이 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내 돈 달래도 주지 않는 기관=지난 3월 터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은 투신권의 도덕적 해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당시 투신권은 고객의 환매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분식회계 여파로 회사채 거래가 끊겨 환매해 줄 돈이 없다는 게 투신사의 변명이었지만 이른바 큰 손들인 기관투자자들은 자금을 모두 빼내갔다. 힘 약한 개인투자자만 당한 꼴이다.
카드채 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6개월 전부터 금융가에는 카드채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투신권은 이를 외면한채 펀드 수익률 높이기에만 급급해 카드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투신권은 이에 대해서도 “카드채 외에는 살 채권이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당시 외국계인 도이치투신운용은 카드채를 전혀 편입하지 않았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잇따른 분식회계사건=카드채 위기는 당시 정부가 은행ㆍ보험 등에 지시해 투신권의 카드채를 일괄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잠시 묻어둔 것 뿐이었다. 이 같은 미봉책은 다시 카드사의 유동성 우려를 증폭시키며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스스로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특히 잊을만 하면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고 있다. 한보ㆍ진로ㆍ대농ㆍ대우ㆍ동아건설ㆍSK네트웍스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고 그때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신뢰회복의 시작은 주주 중시=“주가가 올라도 개인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시장을 믿지 않는 것이지요.”
김병균 대한투자증권 사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들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가 시장을 믿게 하기위해서는 기업 회계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기업이 꾸준히 주주가치를 높여나갈 때 비로소 신뢰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수 대우증권 사장은 “기업도 책임이 크지만 주식을 단기 투자자산으로만 인식하는 정부와 투자자도 문제가 있다”며 “배당률을 올리고 배당소득세를 감면하는 등 장기투자자 우대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된다”고 밝혔다.
<한기석기자 hank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