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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부르고 영화가 반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축제인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0월 4일부터 열흘 간 부산 해운대 근처 극장과 남포동 일대에서 펼쳐진다. 전 세계 최초 개봉작 132편을 포함해 총 75개국 304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어떤 영화들이 손님맞이에 나서는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개막작과 폐막작
홍콩의 신예 렁록만, 써니 럭 감독이 공동 연출한 범죄영화'콜드 워'가 영화제의 문을활짝 연다. 홍콩에서 경찰관 5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무처의 두 부처장인 라우와 리가 사건 해결을 위해 경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단순한 선악의 대립구도를 떠나 인간 내면의 욕망과 양심과의 싸움을 심도 있게 들여다봤다. 폐막작은 방글라데시에서 힘들게 독립영화의 길을 걸어온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의'텔레비전'이다.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종교관, 세대간의 간극, 전통과 현대사회 등의 이야기가 유머러스 하면서도 때로는 신랄하게 펼쳐진다는 평이다.
◇칸 영화제를 뒤흔든 두 작품
한 해 비아시아권 영화의 흐름을 짚어보는'월드시네마' 섹션에서는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를 뒤흔들었던 두 거장 감독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하나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상)에 빛나는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아무르'다. 영화는 중풍에 걸린 아내와 간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 부부의 애절한 사랑과 안락사 문제를 다룬다. 칸 영화제 당시'아무르'와 함께 세계 각국의 영화평론가 및 전문기자들로부터 최고점수인 3.3점을 받아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돼 왔던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비욘드 더 힐스'도 만나볼 수 있다. 수녀가 된 친구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를 만나러 수도원을 찾은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를 신부와 수녀들이 이방인으로 경계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다. 종교로 대변되는 집단이념과 그릇된 확신이 개인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 독특한 소재·세계 최초 공개, 화제작을 만나다
독특한 소재를 다룬 화제작 두 편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소설가 권지예의 동명 단편을 영화화한 박철수 감독의'B·E·D'는 침대를 매개로 인간의 성적욕망을 감각적으로 파헤친다. 김성홍 감독의'닥터'는 싸이코패스인 한 성형전문의를 축으로 성형강국 대한민국에 통렬한 일갈을 가한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자국에서 영화를 찍지 못하고 해외에서 연출해야 하는 이란 거장의 수작도 초청됐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터키에서 찍은'코뿔소의 계절'이 세계 최초로 부산에서 공개된다. 영화는 이슬람혁명의 혼란기에 투옥되고 헤어진 부부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영화도 만나볼 수 있다. 북한, 영국, 벨기에 합작인 영화'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탄광에서 일하던 여주인공 김영미가 평양 교예단 공중곡예사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다. 전쟁의 폐허 속에 잊혀졌던 아프가니스탄 영화도 대중 앞에 소개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고 아프가니스탄 영화들은 소멸 위기를 맞았다. 아프가니스탄 영상자료원이 권력의 눈을 피해 숨겨온 소중한 필름들이 영화제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간 알지 못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독특한 신화를 만나는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