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3일] 맥스웰


‘뉴턴 이래 가장 풍성한 열매를 남긴 사람.’ 아인슈타인의 맥스웰(James C Maxwell)에 대한 평가다. 극찬의 이유는 빛의 전자기파설을 세웠기 때문. 상대성 일반이론도 맥스웰 방정식에서 출발했다. 토성의 고리를 증명하고 수학과 물리학을 연결한 통계역학을 세운 학자로도 유명하다. 1831년 6월13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학습진도가 늦어 가정교사의 꾸지람 속에서 자랐다. 수학에만 흥미를 가졌을 뿐이다. 고교에서도 ‘바보(daftie)’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가 주목 받은 계기는 15세에 발표한 ‘난형(卵形) 곡선’에 관한 논문. 왕립학회가 제기한 ‘계란의 곡선을 완벽하게 그리는 방법’을 풀어 논문으로 발표한 후 ‘수학천재’라는 명성을 얻었다. 에든버러대학을 거쳐 케임브리지에 입학한 그는 천체의 움직임을 방정식으로 해석, 토성의 고리는 액체가 아니라 작은 고체입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졸업 후 모교와 킹스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그의 최대 업적은 전자기이론 확립. 별개로 여겨지던 전기현상과 자기현상을 동일한 이론으로 풀었다. 색채를 분리해 최초의 컬러 사진을 만든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초대 캐번디시연구소장을 맡아 캐번디시의 유고를 정리하고 연구원들을 노벨상 수상자로 길러낸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맥스웰은 복부암으로 1879년 한창 나이인 48세 때 사망했지만 그의 연구는 헤르츠를 거쳐 마르코니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무선통신으로 뻗어나왔다. 통신산업의 뿌리에 맥스웰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맥스웰이 한국에서 환생한다면 재능을 살릴 수 있을까. 국영수, 예체능 과외에 함몰되고 내신의 벽에 막히기 십상이다. 맥스웰의 그림자에 160년 전보다도 못한 교육현실이 스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