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선고 때 ‘카드 돌려막기’ 등 채무 면책 결격 사유가 있더라도 개인 파산자가 다시 경제적 파탄에 빠질 것이 확실할 경우 일부가 아닌 채무 전액을 면책해야 한다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이는 개인 파산자가 재산 은닉 등 채무 결격 사유가 있을 때 판사가 면책 유무와 정도를 결정하는 재량면책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일선 법원 파산 선고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산 신청자가 파산 선고를 받으면 통상 빚을 청산하고 남는 잔존 부채에 대해 전액 면책을 받는다. 신청자의 재산 빼돌리기 등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원칙적으로 면책 불허가 결정이 내려지지만 이 경우에도 당사자가 처한 경제적 상황, 채무 변제 노력 정도 등을 감안해 판사가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책해주는 재량면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파산자 김모씨가 “모친의 질병 치료에 소득 전부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채무의 일부를 면책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며 낸 면책 신청사건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김씨는 직장을 못 구했을 뿐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로서 투병중인 모친과 두 자녀를 부양하는 처지 여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예측하기 어렵다. 잔존 채무를 남겨둘 경우 다시 파탄에 빠지는 사태가 초래되고 이는 채무자의 경제적 갱생을 도모하는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파산자의 경제적 재기를 도와 사회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채무자들이 일부 채무를 면책 받고도 남아있는 빚으로 인해 또 다시 경제적 파탄에 빠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사회불안 요인을 줄이고 서민경제 위축도 예방해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당사자인 김씨는 돈을 꾸거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계를 꾸려오다 대출금을 갚지 못할 처지가 되자 속칭 ‘돌려막기’와 ‘카드깡’으로 이자를 변제해 왔으나 나중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가 축소돼 파산했다. 개인파산ㆍ면책 심사 과정에서 김씨가 아파트 보증금을 빼내 다른 채권자들 모르게 처제에게 꿨던 500만원을 변제하는 등 결격사유가 드러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