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인력 수급관리가 성장 디딤돌"외환위기 당시 싱가포르가 아시아 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충격만 받았던 것은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풍부한 인적자원과 이를 효율적으로 배치시킨 사회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마이클 J 케플러ㆍ컨설팅전문업체 타워스페린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사장)
국가건 회사건 조직의 생존 및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에는 적절한 인력관리가 핵심이다. 21세기 아시아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경제 환경 변화는 '자본, 정보, 인재' 3요소에 의해 사실상 이뤄지고 있다.
국경을 수시로 넘나드는 다국적기업을 주축으로 글로벌경제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세계의 자본과 정보는 우수 인재가 모여있는 곳으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인재들 역시 자본과 정보가 몰리는 곳을 향해 이합집산, 또 다른 차원의 부익부 빈익빈이 진행되고 있다.
케플러 사장의 지적은 '아시아 허브국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패가 국가 차원의 인재관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 정부ㆍ기업 모두 나서라
우리나라의 흥망성쇠는 이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름될 수 밖에 없다.
냉정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세계 최대규모의 저임 노동력을 자랑하는 중국, 안정적인 사회구조와 매력적인 물류시스템을 구축한 싱가포르, 글로벌 금융네트워크의 주축으로 올라선 홍콩,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있는 경제 강국 일본.
어느 한 곳도 만만치 않다. 더 이상 임금경쟁력을 내세울 수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중간한 기술력으로는 버티기조차 힘들어진다. 글로벌 자본과 정보가 유입되기에는 인재 풀도 협소하다.
"총 인구 400만명의 싱가포르에서 70만명은 외국인이다. 특히 외국 연구원이 3~6년만 거주하면 싱가포르 영주권이 부여된다. 경제개발청은 미국 MIT와 싱가포르국립대학 간의 공동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7년간 2억달러라는 예산을 책정해 놓을 정도다."(김은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ㆍ'학습국가를 향한 실천과제' 중에서)
글로벌 인재 육성, 관리에 싱가포르가 들이는 노력들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예 교육시장 자체를 개방해 미국 MIT,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존스 홉킨스 의대, 프랑스 인시아드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명문대학을 유치하고 있다.
▶ 수급관리 개선이 첫 관문
한국의 인재관리에서 가장 큰 문제는 특정 분야로 편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인기학과, 인기직종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외면당하는 학과나 직종'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지는 않았다. 각 부문의 고른 성장과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분야만의 독주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국가가 담당해야 할 사회비용만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한국은 인재가 너무 한쪽으로 쏠려있다. 현재 각광을 받는 정보통신, IT분야는 많은 우수 인력들이 육성, 배치돼 있지만 법률, 금융, 정보 콘텐츠 등 창의력을 요구하는 지식산업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국내에서 활동중인 미국계 한 금융기관의 CEO)
아시아 허브국가 위상을 놓고 중국,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일본 등과 경합할 수 밖에 없는 한국에겐 인재 편중현상이 국가단위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이제부터라도 인재의 수급구조를 치밀하게 관리하라는 '사회의 경종이자, 미래에서 온 계시'이기도 하다.
▶ 활동무대를 만들어 주자
한국은 아직도 '잉여 인재'를 양산하는 사회구조다.
"박사면 뭐 합니까. 쥐꼬리만한 봉급과 열악한 연구환경, 학교로 돌아가 후학들을 가르칠 기회를 잡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고요.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사실 자체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나서야 그나마 안정된 생활기반이라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외국계 보험회사에 입사, 생활설계사로 인생항로를 바꾼 공학박사 K씨는 취재팀에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생계 걱정없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글로벌 인재들을 확보하려면 강력한 유인장치가 있어야 한다. 애국심만을 요구하는 시대도 이미 한참 지났다. 이들에겐 걸맞는 무대가 필요하다.
배우고 닦아온 학문과 지식을 제대로 펼칠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잉여 인재들에게 자유롭고 자신있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이 본격적으로 가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