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1월 19일] 한눈으로 바라본 대학 평가

어제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수험생들이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이 나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낭만이 사라진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고도성장시대가 끝나고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이미 학생들은 학점취득 기계가 돼 있다. 그러나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의 고생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요즘 대학 캠퍼스는 교수업적 기준 상향조정이나 영어강의 개설 등으로 일년 내내 어수선하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언론사가 주도하는 대학평가가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다. 평균 논문 수등 편협한 잣대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려면 우수한 고교졸업생들을 유치해야 하는데 여기에 외부 대학평가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평가는 교육여건, 국제화, 교수연구, 평판ㆍ사회진출도 분야에 대해 이뤄지는데 재정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부분 대학들은 교육여건이나 평판ㆍ사회진출도 분야에서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교수연구 분야와 국제화 부문에 집중해 교수들의 연구업적 요구점수를 상향 조정하는 한편 외국인교수 채용을 늘리거나 내국인 교수의 영어강의를 의무화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평가의 파급효과가 커지다 보니 이제 대학들은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는 갑과 을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이러한 대학평가로 대학의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도 초기에는 대학평가가 무사안일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래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크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한가지 잣대로 대학 줄 세우기에 몰두하는 외부평가 결과를 진리라고 오해할 소지가 많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대학평가에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돼왔다. 일례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최근 일부 언론사들이 실시하는 대학평가가 광고 수익을 올리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비판하고 공정한 대학평가제도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언론사들의 대학평가를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언론사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화 분야를 보면 그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원어강의라는 지표는 마구잡이로 영어강의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어학연수 대신 국내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문과나 일본어과 과목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가.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진다면 영어 대신 중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국제화 분야의 지표 중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도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늘리려면 외국인 학생들의 수강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입학허가를 마구 내어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외국인들의 불법체류나 불법취업을 도와주는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국제화인지 되묻고 싶다. 교수들의 연구업적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연구 분야의 지표로 인문사회와 이공계열 교수 일인당 평균 논문 수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는 과기대나 포항공대 같이 이공계열에 특화된 대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논문보다는 발표나 전시 등으로 평가되는 예술계통을 포함하고 있는 대규모 종합대학의 경우는 자연히 평균업적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논문보다 저술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인문계열 교수들이 "논문 쓰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라는 자조 섞인 불평을 내뱉는 것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대학발전에 채찍보단 걸림돌 대학평가의 잣대는 다양하고 유연해야 한다. 각기 특성이 다른 전공들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대학평가제도하에서 교수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보다는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볼 수 있는 쉬운 연구과제에 매달리게 된다. 이래서는 한국의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확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언론기관의 대학평가가 대학발전의 채찍보다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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